대명 4차 봉기 2) 승기를 잡다

2021. 7. 24. 11:05카테고리 없음

728x90

명나라 조정은 베트남의 실망스러운 전황을 보고 받고 진지 총병관을 강하게 질책했다. 몇 달 내 람선의 불온세력을 섬멸하지 못하면 직책을 박탈하겠다고 경고했다. 진지는 급히 군대를 정비하고 짜롱 수복전을 준비했다.

 

레러이는 진지와의 결전을 앞두고 딘리엣 장군에게 병사 2천 명을 주어 남쪽의 하띤 성()을 공격하도록 했다. 레러이로부터 싸워 이기는 법을 배운 휘하 장군들이 이때부터 전장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레러이 부하 장수들의 공적 안내판
레러이 부하 장수들의 공적 안내판

딘리엣이 이끄는 람선 봉기군이 남하하자 이 지역에서 활동 중이던 반군들이 속속 달려와 합류했다. 덕분에 람선 봉기군은 코끼리부대와 전투함대까지 갖추게 되었다.

 

수세에 몰린 명나라군은 하띤 성도(省都)에 틀어박혀 방어에 급급할 뿐 북쪽 응에안의 진지 총병관을 지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진지와 방정(方政) 장군이 이끄는 명나라군은 짜롱성 탈환을 위해 출발했다.

 

명나라군은 짜롱에 있던 람선 봉기군이 동쪽으로 휴 강을 건너 카르우를 점령한 사실을 행군 도중에 알았다. 급히 공격 목표를 바꾸었는데 숲과 호수가 어지러이 널려있는 카르우 인근에서 또 매복에 걸려 인명피해만 입고 물러나야 했다.

 

레러이는 다시 명나라군을 유인했다. 람선 봉기군이 병영을 태우고 후퇴하자 명나라군이 카르우에 무혈 입성했다. 진지는 람선 봉기군이 식량이 떨어지고 전세가 불리해 달아났다는 잘못된 첩보를 믿고 추격에 나섰다.

 

그러나 레러이는 휴 강가 야산에 병사들을 숨겨놓고 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나라군은 대패해 응에안성으로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써 응에안 전 지역이 레러이의 수중에 들어갔다.

 

진지는 탕롱에 남아있던 병력까지 응에안성으로 불러들인 뒤 남쪽 하띤의 람선 봉기군 분견대부터 공격해 전황을 개선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기밀이 누설돼 쿠엇 강가에서 매복 기습을 받아 수포로 돌아갔다.

 

람선 봉기군은 응에안성으로 퇴각하던 명나라군의 후미를 끈질기게 따라붙어 기가 질리게 만들었다.

 

레러이는 딘레 장군에게 북쪽으로 돌아가 타잉화 지방을 평정하라고 지시했다. 딘레의 부대는 응에안성 바로 위 지엔쩌우현을 거쳐 북상한 뒤 한때는 난공불락으로 생각했던 타잉화성을 가볍게 점령했다.

728x90

람선 봉기군 진격로
람선 봉기군 진격로

레러이는 이어 전선 70여 척으로 함대를 편성했다. 함대는 해안을 따라 남하하며 투언화 성() 즉 오늘날의 꽝빈 꽝찌 투아티엔후에 지방을 모조리 공략했다. 남쪽에 고립된 많은 명나라군 요새들은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이 무렵부터 레러이의 군대는 한 지역의 저항군이 아니라 베트남 민족 전체를 아우르는 국가의 군대가 되었다.

 

명나라군이 연패한 이유에 대해 훗날 편찬된 명사(明史) 열전(列傳) 안남편은 방정은 용감하였으나 지모가 적고, 진지는 유약하고 꺼리는 바가 많았다. 둘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라고 지휘부의 무능과 불화를 지목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새로운 성격의 적을 맞아 과거 성공을 거두었던 낡은 전략을 고집한 것이 명나라가 이해할 수 없는 패배를 거듭한 이유로 보아야 할 것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