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러이 동지들의 영광과 비극

2021. 8. 8. 12:07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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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했던 시절 레러이와 그의 동지들은 룽냐이 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부귀영화를 바라는 게 아니라 백성을 위해 사악한 적을 물리치려는 것이니 제발 도와달라고 빌었다. 세계 최강의 군대에 맞선 그들의 무기는 애국심과 서로에 대한 믿음밖에 없었지만, 그것만으로 온갖 역경들을 헤쳐 나갔다.

 

승리의 날 레러이는 93명의 문무관을 개국공신으로 포상하면서, 첫발을 함께 내딘 이들을 가장 높은 반열에 올렸다. 전략가 응우옌짜이와 명의 마지막 증원군 유승을 격파한 레쌋, 남부지역을 평정한 쩐응우옌한, 서북지역의 명 세력을 일소한 팜반싸오, 목성의 5만 대군을 패퇴시킨 찡카 등이 개국최고공신으로 임명돼 레러이와 함께 새 나라를 이끌었다.

 

레러이 부하 장수들의 공적 안내판
레러이 부하 장수들의 공적 안내판

그러나 평화 속에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의 운명은 비극으로 변해갔다. 최고공신들 대부분이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오명 속에 생을 마쳤다. 이는 왕실의 견제뿐 아니라 공신들 사이의 권력투쟁과 초심을 잃은 부패 등이 원인이었다.

 

태조 레러이는 먼저 쩐응우옌한을 체포해 자결하게 만들었다. 또 팜반싸오를 처형하고 재산을 몰수했다. 레쌋은 태조가 1433년 사망하면서 어린 후계자의 섭정으로 임명할 정도로 신임했지만, 자신의 측근들을 요직에 배치하고 전횡을 휘두르다 5년 뒤 장성한 왕이 권력을 회복하자 목숨을 잃었다. 응우옌짜이 역시 왕의 죽음과 관련해 누명을 쓰고 죽었고, 찡카마저 건국 23년 뒤 처형됐다.

 

응우옌짜이는 태조 치세 때 이미 한 차례 투옥됐고, 태조의 열한 살 손자 태종이 왕위를 잇자 그의 스승이 되었지만 부패 관료들과의 투쟁 끝에 또다시 물러났다. 몇 년 뒤 태종은 응우옌짜이를 다시 불러 절대 신임과 권한을 부여했다.

 

그러나 1442년 군대 사열을 마친 태종이 응우옌짜이 집에 들렀다 환궁하는 길에 급사했다. 응우옌짜이의 첩이 태종에게 식사를 대접했는데, 조정 대신들이 일제히 그가 국왕을 독살한 것으로 몰았다. 결국 응우옌짜이는 삼족을 멸하는 형을 선고받고 일족 300여 명과 함께 억울하게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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