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1. 23:41ㆍ카테고리 없음
후레왕조는 제5대 성종(聖宗) 때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영화도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497년 성종이 죽자 장남인 헌종(憲宗)이 제위를 물려받았다. 그는 부친 못지않은 현명한 왕이었지만, 불행히도 재위 6년 만에 44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 뒤 헌종의 셋째아들인 숙종(肅宗)과 둘째아들 위목제(威穆帝)가 차례로 즉위했는데, 숙종은 너무 어렸고 위목제는 정사보다 주색에 더 관심이 많았다.
위목제가 자신의 즉위에 반대했던 태황태후와 중신들을 살해하는 등 공포정치를 펼치자 사촌인 양익제(襄翼帝)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했다. 양익제는 전임자인 위목제의 부도덕성을 맹비난했지만, 그 역시 불필요한 토목공사에 백성들을 내몰면서도 본인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 원성을 샀다.
이들 황제들이 특별히 악하거나 어리석었다기보다는 오랜 평화 시기에 궁전에서 나고 자라면서 제도화된 권력이 저절로 유지되는 것으로 믿게 된 게 잘못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삶의 터전을 잃은 농민들이 전국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양익제 치세인 1511년부터 시작된 반란은 한때 농민군이 탕롱을 점령할 정도로 기세가 무서웠다.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찡쭈어이싼과 응우옌황주 같은 군벌들이 세력을 키웠다. 반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 한 채 권위만 내세우던 양익제와 그의 어린 후계자는 이들 군벌들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14살의 소종(昭宗)이 옹립됐지만 이제 권력은 왕의 손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반격을 노린 소종(昭宗)과 측근들은 명망 높은 장군인 막당중(莫登庸)을 중용해 군벌 세력을 억누르려 했다. 막당중은 중국인 이민자 조상을 둔 가난한 어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한 뒤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고속 승진해 10여 년 만에 고위급 장군 반열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러나 출신이 미천하다고 권력욕이 약할 것이라는 기대는 왕의 착각에 불과했다. 병권을 쥔 막당중이 왕족과 중신들을 제거하며 권력을 강화하고 왕의 일거수일투족까지 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