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청교체 8) 영원성을 지킨 마지막 영웅

2021. 8. 26. 09:56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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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정필을 죽이고 나니 국경을 지킬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이때 하급관리였던 원숭환이 단신으로 후금 진영을 염탐하고 돌아와 그들의 사정을 보고했다. 그는 문관이었으나 어렸을 때부터 군사에 관심이 많았고 각종 병법에 능통했다.

 

명나라 조정은 원숭환을 파격적으로 승진시켜 은화 20만 냥을 주고 산해관 밖을 지키게 했다. 그는 산해관에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영원을 방어거점으로 정하고 새로 성을 쌓았다.

 

마침 이때 서광계가 완고한 조정을 설득해 포르투갈 홍이포(紅夷砲) 30문을 들여와 11문을 산해관에, 19문은 북경성에 설치했다. 원숭환은 산해관 홍이포 중 일부를 영원성으로 옮기고 화포 전문가를 불러 부하들을 훈련시켰다.

 

그런데 새로운 요동경략으로 고제라는 자가 임명됐다. 고제는 병력이 산개해 있으면 각개 격파당하니 한곳에 모여 지키자고 주장했다. 그래서 산해관 밖의 모든 명나라군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원숭환이 강력히 반대하자 그러면 영원성만 남아 있으라고 지시했다.

 

명나라 군대 (사진 출처 Wikimedia)
명나라 군대 (사진 출처 Wikimedia)

1626219, 누르하치가 15만 대군을 이끌고 나타났다. 원숭환의 병력은 2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영원성은 곧 함락될 것 같았다.

 

누르하치의 후금군은 2.5거리를 두고 성을 에워쌌다. 이 정도면 기존의 명나라 대포 사거리 밖이었다. 그러나 홍이포는 유효사거리가 1, 최대사거리가 5에 달했다.

 

영원성에서 일제히 홍이포를 발사하자 후금 진영에 포탄이 떨어졌다. 병사 수십 명이 죽었고, 진영을 뒤로 물리느라 법석을 떨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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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성 전투 (만주실록)
영원성 전투 (만주실록)

후금군은 다음날 새벽 공격을 시작했다. 야음을 틈탄 기습이었다. 그러나 대비하고 있던 명나라군이 화승총을 난사해 이를 막아냈다.

 

낮이 되자 후금군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각종 공성장비가 동원되었다. 지붕 덮인 수레인 분온차에 여러 병사들이 들어가 밀고 온 뒤 도끼로 성벽 아래를 깨기 시작했다. 명나라군은 불붙은 장작을 던지다 효과가 없자 화약 자루에 쇠사슬을 묶어 떨어뜨려 분온차를 폭파시켰다.

 

공성전에서 후금군의 기동력은 의미가 없었고, 병력의 우세도 명나라군의 화력으로 상쇄했다. 원숭환은 직접 성벽에 올라 병사들을 지휘했으며 화살에 맞고도 자리를 피하지 않아 사기를 드높였다.

 

둘째 날에는 후금군이 반나절을 쉰 뒤 늦은 오후부터 공격을 시작했다. 총기 조준이 힘든 야간 전투를 택한 것이다. 누르하치가 직접 나서 병사들을 독려했지만 끝내 성벽을 넘는 데 실패했다.

 

누르하치는 결단이 빨랐다. 이틀간의 공격에 성과가 없자 후금군은 영원성 인근의 각화도(覺華島)로 군대를 보냈다. 명나라군 보급기지였다.

 

발해만의 섬이었지만 바다가 꽁꽁 얼어 기병대가 들어갈 수 있었다. 명나라군 병사 7천 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후금군의 기습을 막아내지 못했다. 후금군은 영원성 패배의 보복으로 섬 주민들까지 모두 학살했다.

 

각화도 점령으로 체면을 세운 누르하치는 영원성에서 물러났다. 그가 명나라에게 당한 첫 패배였다. 누르하치는 분한 마음에 휘하 장수와 아들들에게 곡식이나 훔쳐먹는 쥐새끼들이라고 극언을 퍼부었다.

 

누르하치는 영원성 전투 후 6개월 만에 사망했다. 일설에는 그가 영원성에서 홍이포 파편에 맞아 부상했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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