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들 독립을 꿈꾸다

2021. 5. 18. 11:29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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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남부인 청해주의 절도사 유엄이 후양 황제에게 왕으로 책봉해달라고 요구했다 거절당했다. 그러자 유엄은 스스로 제위에 올랐고 국호를 남한(南漢)이라 정했다. 남한은 지금의 중국 광동성과 광서성에 걸친 한반도 면적의 약 두 배쯤 되는 지역을 차지해 당시 중국을 할거했던 여러 국가들 중에는 비교적 약체였다.

 

베트남과 남한의 위치
베트남 ( 교지 ) 과 남한의 위치

그러나 베트남에는 위협적인 존재여서 쿡씨 정권은 중국 화북의 후양과 관계를 강화하며 남한의 세력 확장을 경계했다. 호시탐탐 베트남 침략을 노리던 남한의 유엄 황제는 후양 왕조가 후당으로 교체되며 중원이 혼란에 휩싸이자 이를 기회로 보고 군사행동을 개시했다. 남한군은 일거에 쿡씨 정권을 격파하고 그 수장을 압송했다.

 

남한의 베트남 점령은 일 년여에 그치고 말았다. 쿡씨 정권의 장군이었던 즈엉딩응에(楊廷藝)가 흩어졌던 병사들을 모아 반격을 가한 것이다. 쿡씨 정권만 무너뜨리면 전체 베트남이 저절로 병합될 것이라는 유엄의 오판에다, 베트남을 점령한 뒤 그 남쪽의 참파까지 쳐들어가 노략질에 정신을 파느라 남한군의 전열이 흐트러져 있었다.

 

또한 중국의 오랜 지배를 받는 동안 문명이 전파돼 베트남의 기술력도 뒤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외세의 압제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베트남 민중에 넓게 퍼져 있었다.

 

즈엉딩응에는 남한군을 격퇴한 뒤 스스로 절도사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독립의 꿈을 채 실현하지 못한 채 사랑하는 양아들 끼에우꽁띠엔에게 암살됐다. 식민 지배의 중심지인 홍강 삼각주에서 나고 자란 끼에우꽁띠엔는 변방인 남부 아이주 출신으로 독립을 추구했던 즈엉딩응에의 정치 노선을 친중국 성향으로 바꾸려다 안 되자 살해했던 것이다.

 

아이주에 주둔하고 있던 즈엉딩응에의 사위 응오꾸엔(吳權)은 장인이 피살됐다는 소식을 듣자 곧바로 봉기했다. 이제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권 안에 머무르려는 세력과 중국을 몰아내고 독립을 이루려는 세력으로 나뉘어 정면충돌을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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