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자 후계자와 레 왕조의 종말

2021. 5. 27. 10:10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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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위협을 제거하고 내정이 안정되자 레호안은 그동안 미뤄왔던 남쪽 참파 원정을 단행했다. 참파는 딘보린 황제가 죽은 뒤 레호안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응우옌박을 도와 수군으로 베트남 수도 호아루를 공격하려다 패배해 물러났었다.

 

그래도 레호안은 송나라의 침략이 임박해오자 참파와 우호관계를 맺기 위해 사신을 보냈는데 참파 왕이 사신을 옥에 가두었다. 이에 격분한 레호안은 송과의 전쟁이 끝난 다음 해 참파를 공격해 수도 인드라푸라를 점령하고 사원과 궁전을 파괴한 뒤 수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왔다.

 

베트남이 참파에 가한 최초의 공격이었는데, 충격을 받은 참파는 수도를 남쪽 비자야로 옮겼다. 이때부터 참파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 베트남의 남진에 끝없이 밀리다 17세기 이후 국가로서의 형태마저 잃고 소수민족으로 전락했다.

 

레호안은 내치에도 힘을 기울여 중국 제도를 참고해 관료체제를 정비하고 농업을 장려했다. 참파 공격을 위해 운하를 파고 여러 곳에 도로를 닦았는데 이것이 상업과 수공업 발전을 촉진했다. 레호안이 중국 화폐 대신 베트남 역사상 처음으로 천복전(天福錢)이라는 자체 주화를 만들어 유통시킨 것도 이 같은 경제 발전에 부응한 것이었다.

 

그러나 레호안도 자신의 후계 구도를 제대로 확립해놓지 않아 훗날 대규모 살육과 왕조의 몰락을 자초했다. 레호안은 다섯째 아들 롱딩을 태자로 세웠다가 죽기 한 해 전에 셋째 아들로 바꾸었다. 그리고 1005년 그가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곧바로 왕자들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

 

호아루에 있는 레호안 사당
호아루에 있는 레호안 사당

레호안은 아직도 끊임없이 반기를 드는 지방을 공고히 지배하기 위해 왕자들을 왕으로 봉해 각지에 내려 보냈는데 이들이 임지의 군사력을 이용해 왕위 쟁탈전을 벌인 것이다. 태자를 즉위 사흘 만에 살해한 전 태자 롱딩이 왕자들의 싸움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고 새 황제가 되었다.

 

그는 정신병자였다. 롱딩은 즉위한 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죄인들을 불에 태우고, 짐승 우리에 넣고, 강물에 빠뜨려 죽였다. 사람들을 높은 나무에 오르게 한 뒤 밑동을 잘라 쓰러뜨렸고, 배에 태우고는 뒤집어 악어에게 잡아먹히게 했다.

 

고위직 승려 머리 위에 사탕수수 토막을 올려놓고 칼로 껍질을 벗기다 실수로 이마를 찔러 피가 흐르자 재미있다며 웃기도 했다. 롱딩의 반불교적 행동은 베트남 불교계가 훗날 왕조 교체에 앞장서는 결과를 불러왔다. 그러나 롱딩의 잔학행위가 계속되는 4년 동안에는 모두가 두려움에 떨 뿐 그를 타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롱딩은 문란한 생활 때문에 여러 병을 얻어 누워서 정사를 보았는데, 이 때문에 와조(臥朝)라는 모욕적인 시호를 얻었다. 롱딩은 결국 24살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10살 난 아들이 있었고 롱딩의 두 동생이 왕위를 다투었지만 부질없는 싸움이었다.

 

학정에 넌더리가 난 승려와 관리들이 뜻을 모아 롱딩 황제의 처남이자 왕실근위대장으로 궁궐 안팎을 통제하고 있던 리꽁원(李公蘊)을 새 황제로 추대한 것이다. 1009, 전레(前黎) 왕조는 230년 만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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