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9. 21:06ㆍ카테고리 없음
몽골인들은 스스로를 ‘푸른 늑대의 후예’라 불렀다. 별이 쏟아지는 지평선을 배경으로 검은 실루엣과 긴 울음소리가 어우러지는 낭만적인 의미가 아니라, 언제나 생존의 한계를 넘나들어야했던 거친 운명의 함축이었다.
그들은 척박한 광야에서 늑대의 무리처럼 크고 작은 수십 개의 부족으로 나뉘어 유목과 약탈과 전쟁에 의지하며 살았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빼앗는다는 게 그들의 법이었고, 분열과 갈등과 살육은 영원히 반복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 혼돈의 땅에 어느 날 새로운 사고와 신념을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 그들을 지금껏 가보지 못한 길로 이끌었다.
테무진은 몽골고원 북쪽 오논 강가에서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적에게 독살당하자 동족들은 그의 가족을 버리고 모두 떠났다.
어머니와 어린 형제들만 남아 사냥과 채집으로 연명하던 중 식량을 놓고 싸우던 배다른 형을 활로 쏘아 죽였고, 이 때문에 평생 ‘형제를 죽인 자’라는 오명을 쓰고 살아야 했다. 테무진 본인이 적대 부족에게 붙잡혀 노예로 살다 탈출하기도 했다.
빈손뿐이던 테무진은 여러 집단들과 연합을 통해 조금씩 세력을 키워갔다. 먼저 아버지의 의형제였던 케레이트 부족 옹칸에게 찾아가 복종의 뜻을 밝히고 그의 도움을 받았다.
메르키트 부족이 자신의 아내를 빼앗아가자 옹칸과 의형제 자무카를 끌어들여 설욕했다. 몽골을 분열시키려는 금나라의 지원 속에 타타르 족을 공격해 승리했고, 테무진의 부상에 위협을 느낀 여러 부족들이 자무카를 중심으로 뭉치자 옹칸과 힘을 합해 이를 격파했다.
자무카 역시 당대의 영웅이었지만 가문과 서열을 중시하는 종래의 관습에 따라 귀족들만 중용하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에 테무진은 양치기라도 능력에 따라 직책을 맡겼고 적마저도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형제로 대했다.
가족이나 부족의 틀 안에 안주할 수 없었던 유년기의 시련이 그에게 보다 개방된 가치관을 갖게 해준 것이다. 자무카와 테무진의 이 같은 차이는 수십 년에 걸친 경쟁에서 결정적으로 승부를 갈랐고, 훗날 몽골을 세계제국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테무진은 맏아들을 옹칸의 딸과 혼인시키려다 함정에 빠졌다. 이때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켰던 19명의 전사가 아홉 부족 출신이었다는 것은 전통적인 부족 관념을 벗어난 새로운 정치체제가 출현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테무진은 흩어진 병사들을 모아 케레이트 부족을 습격해 승리를 거두었고, 이어 몽골의 패권을 다투던 마지막 경쟁자 나이만 왕국을 정복했다. 1206년 테무진은 쿠릴타이를 열어 ‘위대한 왕’이라는 뜻의 칭기즈칸 칭호를 얻고 인구 100만의 새 국가를 탄생시켰다.
칭기즈칸은 백성들을 10호 100호 1,000호 10,000호 체제로 재편해 동원과 관리의 효율성을 높였다. 또한 부족 간의 납치와 몽골인을 노예로 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자신을 포함해 모든 개인보다 법이 우위에 있다고 선언했으며, 시베리아 부족과 위구르족까지 친족 관계를 확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