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10. 09:42ㆍ카테고리 없음
통일된 몽골의 최대 목표는 지난 1백 년간 자신들을 핍박해온 금나라의 타도였다. 여기에 필요한 병력과 물자를 얻기 위해 몽골은 먼저 중국 서북부에 있던 서하를 공격해 2년 만에 정복했다. (1209년)
서하에 이어 금나라 북쪽 방어를 맡고 있던 거란족 기병들까지 저항 없이 몽골군에 합류했다. 금나라의 군대도 여진족 외에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돼 있었지만, 칭기즈칸의 다민족군이 공동체에 대한 충성과 결속력이 더 강했다.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토록 두려워했던 금나라 군대에 서전에서 승리를 맛본 몽골군은 병력을 몇으로 나누어 황하 이북과 만주 전역을 휩쓸었다. 몽골군은 요새화된 대도시들은 우회한 채 작은 마을들을 하나하나 공략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 살해했다.
중원을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로 만든 몽골군은 금나라 수도 중도(中都) 즉 지금의 베이징을 점령하기 위해 다시 집결했다. 그러나 높은 성벽을 공격할 장비가 없는데다 포위 기간이 길어지며 식량은 떨어지고 전염병이 창궐해 몽골군은 자칫 궤멸될 위기에 놓였다.
칭기즈칸은 이런 약점을 감춘 채 더이상 공격할 의사가 없다면서 화평을 제안했다. 몽골군의 상태를 눈치챈 금나라 조정에서 격론이 벌어졌지만 황제는 눈앞에서 지긋지긋한 적군이 사라진다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금은 몽골에게 공주와 소년 소녀 5백 명, 비단옷 3천 벌, 말 3천 마리를 공물로 보냈고, 이후에도 매년 상당한 공물을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이로써 몽골은 엄청난 전리품과 함께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1215년)
칭기즈칸은 서하에서 넘겨받은 실크로드의 교역을 되살리고 싶어 했다. 유목민족인 그에게 중계무역 국가들의 넘치는 부와 호사는 오랜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는 자신의 대상들이 세상의 서쪽 끝에서 온갖 진귀한 물건을 싣고 돌아오는 모습을 그리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칭기즈칸은 중앙아시아의 대국 호라즘과 통상 협정을 맺고 450명의 상인들에게 비단과 금 은 등 사치품을 가득 실어 보냈다. 경험이 풍부한 인도 상인을 영입해 상단의 지휘를 맡길 만큼 첫 번째 교역의 성공을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그런데 현 카자흐스탄 지역의 한 성주가 재물을 탐내 상인들을 첩자로 몰아 모두 학살하는 대형 사건이 발생했다. 격노한 칭기즈칸은 호라즘 술탄에게 사신을 보내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는데, 신흥강국의 우월감에 빠져있던 술탄은 오히려 사신을 모욕하고 살해했다.
이제 칭기즈칸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신에게 “내가 일으킨 고난이 아니니, 복수할 힘을 달라”고 기도한 뒤 20만 대군을 이끌고 한겨울에 천산산맥을 넘었다. (1219년)
호라즘 왕은 몽골군이 당연히 남쪽으로 올 줄 알고 기다리다 허를 찔렸다. 몽골군은 북부 도시들을 파괴해 이를 막으려고 호라즘군이 이동하도록 만든 뒤 분산된 적을 차례로 격파했다. 칭기즈칸의 진격은 오늘날 파키스탄에 이르러서야 일단 멈추었다.
칭기즈칸은 호라즘 원정 때 병력을 보내지 않은 서하를 다시 공격해 초토화시켰고, 최종 승리를 목전에 둔 1227년 병사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땅끝까지 정복하라”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한편 칭기즈칸은 호라즘을 멸하고 돌아오면서 별도의 부대를 편성해 서쪽으로 계속 진격하도록 했다. 제베와 수보타이, 바투가 이끄는 몽골군 7만 명이 1221년부터 6년간 러시아와 흑해 일대를 휩쓸다가 칭기즈칸의 사망 소식을 듣고 회군했다.
유럽의 입장에서는 악마와도 같은 군대가 나타나 온 세상을 불태우더니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유럽은 안도했지만 더 큰 재앙이 기다리고 있었다.
몽골은 9년 뒤인 1236년 오고타이 칸의 명령으로 바투가 이끄는 원정군 10만 명을 유럽으로 출발시켰다. 이들은 먼저 러시아의 여러 제후국들을 정복한 뒤 유럽 대륙으로 향했다.
두 갈래로 길을 나눈 몽골군은 1241년 폴란드에서 최정예 튜튼기사단이 포함된 유럽 연합군 5만 명을 전멸시켰고, 거의 동시에 동유럽의 강호 헝가리의 10만 대군을 격파했다.
이어 몽골군은 이탈리아 북부와 오스트리아 빈으로 정찰부대를 보내 공격 지역을 고르던 중 오고타이 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군대를 철수했다. 서유럽의 기독교 문명이 위기를 넘기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전 세계 모든 왕국들의 군대가 몽골군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잔인한 살육과 파괴를 당하면서 사람들은 몽골군을 ‘신의 징벌’ 또는 ‘말을 탄 악마’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 그러나 당연히 그들도 무적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