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1차 송나라 침략 (1) 경솔함이 부른 국난

2021. 6. 12. 01:16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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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를 멸한 직후에는 몽골과 송나라의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해도, 세계정복을 향한 몽골의 야심은 언젠가는 송을 침략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송의 섣부른 군사행동이 양국의 충돌을 앞당기고 말았다.

 

맹공이 금에서 개선하자 송은 축제 분위기였고 내친 김에 화북의 옛 영토를 되찾자는 강경파의 주장이 거세졌다. 특히 북송의 수도였던 개봉의 탈환은 국가적 숙원이었다.

 

송은 무려 20만 명을 동원해 북진했고, 텅 빈 개봉과 인근의 낙양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송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던 몽골이 이미 낙양에서 동쪽으로 200km 떨어진 동관에 속속 군대를 집결시키고 있었다.

 

송나라가 점령한 옛 수도 개봉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송나라가 점령한 옛 수도 개봉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송군은 갑작스럽게 출병하느라 군량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현지에서 조달할 생각이었는데, 풍요롭던 개봉 일대가 몽골의 철저한 파괴로 잿더미가 되어 있어 병사들이 굶주림에 시달렸다. 여기에 몽골군의 공격이 시작되자 송군은 제대로 겨뤄보지도 못하고 패주하고 말았다.

 

송나라가 먼저 싸움을 걸었다는 명분까지 얻자 오고타이 칸은 쿠릴타이를 열어 남송 정벌을 결의하고 대대적인 원정에 나섰다. (1235) 몽골은 병력을 셋으로 나누어 서쪽은 사천, 중앙은 양양, 동쪽은 회남 방면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몽골군의 초반 기세는 무서웠다. 1년여 만에 성도 이주 동천 양양 등 송의 주요 거점들을 함락했고, 몽골의 중앙과 동쪽 부대가 황주에서 합류해 장강을 넘어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몽골의 진격은 거기까지였다.

 

서구에서 만든 일부 역사다큐멘터리들은 몽골 기병과 송나라 보병의 모습을 늑대에게 쫓기는 양떼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양군의 전력 차이가 그렇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고, 송이 무기력하게 무너지지도 않았다.

 

몽골이 화북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 전해 들은 송의 백성들은 결사적으로 저항했다. 중국 회수 이남의 지형은 하천과 수로가 많아 몽골 기병대의 기동을 제한했고, 덥고 습한 기후는 평생 사막에서 살아온 병사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송에는 유능한 군 지휘관들이 있었다.

 

몽골군이 거세게 남하해오자 송의 조정은 맹공을 다시 전선으로 보내 이를 막도록 했다. 맹공은 과거 금나라의 거듭된 침략을 격퇴한 전공뿐 아니라 평소 청렴한 생활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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