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2차 송나라 침략 (2) 왕위 쟁탈전

2021. 6. 16. 19:33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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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케 대칸이 죽고 몽골군의 철수가 시작되자 송나라 동부전선에서 싸우던 쿠빌라이는 마음이 빠짝 타들어갔다. 자신이 중국에 그리고 동생 훌라구는 서아시아에 묶여 있는 사이 수도 카라코룸에서 쿠릴타이가 열리면 그곳을 통치하던 막내 아릭부케가 대칸으로 선출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장 철수했다가는 운남성에서 올라오던 우량하타이가 고립될 위험이 컸다. 운남 주둔군은 얼마 전까지 자신이 지휘하던 부대였고 앞으로 벌어질 내전에서 큰 힘이 되어줄 병력이었다. 쿠빌라이는 운남 주둔군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쿠빌라이는 송나라의 예상을 깨고 양쯔강을 건너 악주를 포위했고, 깜짝 놀란 송의 조정은 가사도(賈似道)에게 군사를 주어 이를 구원하도록 했다. 송의 원병 규모가 부담스러웠고 우량하타이도 어느 정도 북상해왔기 때문에 쿠빌라이는 다시 양쯔강을 넘어 철수했다.

 

이때 가사도는 몽골군 후미를 공격해 170여 명을 사살했고, 이를 자신이 쿠빌라이를 격퇴한 것으로 포장하는 데 성공했다. 가사도는 몽골의 2차 침략을 막아낸 진정한 공로자인 왕견을 제치고 일약 구국의 영웅으로 떠올랐으며, 그 전공을 바탕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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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빌라이는 대칸 자리를 놓고 동생 아릭부케와 4년 간 내전을 벌였다
쿠빌라이는 대칸 자리를 놓고 동생 아릭부케와 4년 간 내전을 벌였다

쿠빌라이는 시간이 지체되어 이제 카라코룸으로 돌아가 봐야 아릭부케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지금의 내몽골에서 자신의 지지자들로 쿠릴타이를 열어 스스로 대칸에 즉위했다. 사실상의 반란이었다.

 

한 달 뒤 아릭부케도 정식으로 부족장들이 모인 쿠릴타이에서 대칸으로 선출됐다. 이때부터 4년간 형제 간의 전쟁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아릭부케의 지지 세력이 훨씬 많았다. 그러나 쿠빌라이 쪽은 지면 죽는다면 절박함이 있었던 반면, 아릭부케 쪽은 정통성이 있으니 지지한다는 느슨한 연대에 가까웠다.

 

전쟁은 쿠빌라이에게 유리하게 전개됐다. 금나라 정복 이후 중국 화북지방은 몽골의 식량 등 주요 자원 공급처였다. 쿠빌라이는 이를 막아 아릭부케를 곤경에 빠뜨렸다.

 

아릭부케는 물자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옛 서요 지방을 다스리던 차가타이 가문에 지원을 요청했다. 차가타이 가문은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쿠빌라이 쪽으로 노선을 바꿨다. 아릭부케는 이를 응징하려고 공격했는데 포로들을 잔인하게 학살해 비난을 받았다.

 

여러 부족들이 아릭부케에게 실망해 하나 둘 떠나면서 그는 고립됐다. 결국 아릭부케는 쿠빌라이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쿠빌라이가 누가 옳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아릭부케는 그때는 우리가 옳았고 지금은 형이 옳소라고 후세에 길이 기억될 말을 남겼다.

 

1264년의 일이었다. 이제 내전이 끝났다. 몽골의 창끝은 다시 송나라를 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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