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8. 12:58ㆍ카테고리 없음
중국 황하 중·하류에 터를 잡고 고대문명을 일으킨 한(漢)족은 상나라 주나라를 거치며 황하 상류로 다시 사방 각지로 세력을 뻗어 나갔다. 정치와 경제 기술 등 다방면에서 앞서 있던 한족의 문화는 자석처럼 주변 민족들을 끌어당겨 속속 중화의 질서 안에 편입시켰다.
이민족들은 오랜 세월이 흐르며 스스로를 한족이라 여기게 되었고, 중원의 패권 경쟁에 뛰어들기까지 했다. 중국 남부의 광대한 국가였던 초나라는 당초 오랑캐로 분류됐지만 전국시대 한때 최강자로 군림했고, 서쪽의 진나라도 오랑캐라고 멸시당하다 최후의 승리를 거둬 중국을 통일했다.
지금은 중국의 한복판을 관통해 흐르는 장강(長江) 즉 양쯔강이 고대 중국인들에게는 머나먼 남쪽 변방이었다. 그 아래 첸탕강 유역 지금의 저장성 지역에 신석기시대부터 황하와는 별도의 문명이 발달해오다 춘추시대에 월나라를 세워 주나라의 책봉을 받았다. 월은 ‘와신상담’의 고사를 남긴 구천왕 때 오나라를 멸망시키며 전성기를 누리다 전국시대 들어 강자로 부상한 초나라에게 복속되었다.
월나라의 본래 백성들은 백월(百越)족이었는데, 한족과 언어가 달라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들이 현재 베트남 민족과 정확히 일치하는지는 의문이지만, 깊은 혈연관계이거나 베트남족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월나라가 초나라에게 망하자 지배층 일부가 국경을 넘어 남쪽으로 망명했고, 많은 백성들이 그들과 함께 고향을 떠났다.
백월족의 수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진나라의 막강한 군대가 약소국인 한나라를 점령한 뒤 최대 경쟁자였던 조나라마저 격전 끝에 멸망시켰다. 그 뒤 진나라군은 막혔던 둑이 터진 듯한 기세로 위, 초, 연, 제를 차례로 정복하고 기원전 221년 마침내 천하통일을 이루었다.
진나라는 주변 이민족의 병사들을 받아들인 혼성편제로 군사력을 극대화한 반면, 초나라는 가장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도 이를 국력으로 결집하지 못해 진나라에 밀려 수도를 옮겨 다니다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초나라가 멸망하고 진나라의 무자비한 통치가 실시되자 또 한 번 백월족들이 대거 남쪽으로 이주했다. 이 같은 연쇄적인 민족 이동은 베트남에 먼저 도착해 수백 년간 평화를 누리던 반랑에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