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2차 베트남 침략 (4) 물러가는 적들

2021. 6. 22. 16:25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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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에 몰린 몽골군은 몇몇 성들에 틀어박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보급선이 끊어진데다 베트남의 청야전술로 어디서도 쌀 한 톨 구할 수 없었던 몽골 병사들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우기가 계속되면서 진중에 전염병도 퍼졌다. 토곤이 1차 침략의 실패 원인을 분석해 원정군에 중국 의사들을 대거 동행시켰지만 근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굶주림과 전염병에 시달리던 몽골군은 결국 퇴각했다
굶주림과 전염병에 시달리던 몽골군은 결국 퇴각했다

토곤은 결국 철군을 결심했다. 몽골군은 중국 광서성과 운남성의 본래 주둔지를 향해 북동쪽과 북서쪽 두 갈래로 나뉘어 빠르게 퇴각했다. 토곤 자신은 킵차크 출신 시도르가 이끄는 수군의 배를 타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육로로 이동한 대부분의 부대는 베트남군의 격렬한 반격에 시달렸다. 쩐꾸옥뚜언은 홍강 북쪽에 5만 명의 병력을 보내 몽골군의 앞을 가로막았다.

 

반끼엡, 노이방, 카리 등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무려 5만 명이 넘는 몽골군 병사들이 포로로 붙잡혔다. 사기가 오른 베트남군이 야전에서도 몽골군에 승리를 거둔 것이다.

 

포위망을 겨우 빠져나온 몽골군 병사들도 국경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분노한 베트남 군민의 매복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12858, 베트남의 전 영토가 몽골군으로부터 해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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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왕궁의 쩐왕조 시대 유적
하노이 왕궁의 쩐왕조 시대 유적

인종은 잿더미가 된 수도 탕롱으로 돌아왔다. 노도처럼 밀려드는 몽골군을 피해 몽진한 지 반년만이었다. 인종은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장군과 관리들을 골고루 포상했다.

 

특히 총사령관인 쩐꾸옥뚜언을 왕으로 책봉해 흥다오브엉(興道王)이라는 작위를 수여했다. 이 때문에 쩐꾸옥뚜언을 쩐흥다오(陳興道)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부른다.

 

인종은 이듬해 몽골군 포로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쿠빌라이 칸에게 화평을 애타게 요청한 것이다. 베트남은 피를 흘리지 않고 나라를 지키려는 외교전에 작은 희망마저 버리지 않았다.

 

비록 침략을 막아내고 승리했지만 2차 대몽항전으로 베트남은 전 국토가 폐허가 되었다. 여기에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곳곳에서 기근이 들었다.

 

인종은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기 위해 세금을 깎아주고 빈민을 구제했으며 라오스에 대한 원정 계획을 연기했다. 이 같은 선정 속에 베트남의 국내 상황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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