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왕국

2021. 7. 8. 10:24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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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상황이었다. 그런데 강한 지도력으로 이를 극복해야 할 탕롱의 궁정에서는 오히려 해괴한 정변이 일어나 가뜩이나 흔들리던 쩐왕조 체제를 거세게 뒤흔들었다.

 

하노이 왕궁의 쩐왕조 시대 유적
하노이 왕궁의 쩐왕조 시대 유적

옛날 명종 황제에게 버림받았던 장남 쩐둑은 뚜옹을 부르던 인기 여가수를 사랑해 이미 다른 남자 가수와 혼인해있던 여인을 데려다 아내로 삼았다. 이때 여가수의 몸속에는 전남편의 아기가 잉태되어 있었다. 쩐둑은 아이를 쩐녓레(陳日禮)라고 이름 짓고 친자식처럼 키웠다.

 

어느덧 장성한 쩐녓레는 대궐을 드나들며 출중한 인물과 언변으로 황제 유종의 생모 헌자태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유종이 34살의 나이에 후사 없이 죽자 후계 결정권을 가진 헌자태후가 주변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쩐녓레를 다음 황제로 지명했다.

 

황제가 된 쩐녓레는 곧바로 숨겨왔던 마각을 드러냈다. 그는 양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친아버지 성에 따라 즈엉녓레(楊日禮)라고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쩐 왕조를 즈엉 왕조로 교체하기 위해 수많은 쩐씨 유력자들을 죽였다.

 

양아버지 쩐뚝과 헌자태후마저 살해해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쩐씨 왕족들이 반격을 가해 두 차례의 쿠데타를 통해 가까스로 즈엉녓레를 몰아내 처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즈엉녓레의 약 일 년 통치기간 중 벌어진 대학살은 지도층의 붕괴로 쩐왕조 멸망과 나아가 베트남 주권 상실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즈엉녓레를 타도한 명종의 셋째아들 쩐푸(陳暊)1370년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쩐 왕조의 제8대 황제 예종이었다. 비록 왕위는 되찾았지만 예종은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국내외 위기를 극복할 역량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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