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5. 17:56ㆍ카테고리 없음
쩐왕조 복원이라는 명나라의 개전 명분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베트남인들을 위무하기 위해 3년간 조세와 부역을 면제해주겠다고 선포했지만 호왕조의 잔여 세력이 소멸하자 이 역시 흐지부지됐다.
그리고 중국에서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관리들이 떼 지어 오면서 본격적인 수탈이 시작됐다. 애당초 명나라 군대가 좋은 일을 하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명의 식민정부는 반란을 우려해 베트남인들이 무기를 제조하거나 소지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리고 저항의 수단이 제거된 베트남인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했다.
병합 1년도 안 돼 베트남에서 거둬들인 세금이 우마 24만 마리, 벼 1360만 석, 배 8670척 등이었다. 가난한 산악국가였던 중세 베트남의 경제를 거의 거덜 내다시피 한 것이다.
16세부터 60세까지 모든 남자는 군역과 부역에 동원됐다. 둔전 개발과 도로 공사, 광산 채굴, 진주조개 채취, 수렵 등 주민들에게 강요된 부역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게다가 수확물은 모두 명에서 가져갔다. 갖은 트집을 잡아 사유 재산을 몰수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숙련된 기술자와 지식인 수천 명을 명으로 끌고 갔다.
명은 베트남 풍속을 야만적이라고 매도하며 중국의 문화와 풍속을 따르도록 강제했다. 머리를 짧게 깎거나 고유 의상을 입는 것마저 금지했다.
이는 명 나름대로 선진 문명을 전파하겠다는 의도이기도 했다. 베트남 정복 10여 년 뒤 한 관리가 상소를 올려 “교지(交趾) 사람들이 아직도 야만적인 관습에 젖어 있어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흰옷이 아닌 검은 옷을 입고 상중에도 평소처럼 일하며 행동을 삼가지 않습니다”라고 보고하자, 명 천자가 놀라 “그들에게는 부모도 없는가?”라고 물었다는 기록은 이 같은 의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유문화를 말살해 베트남 민족을 아예 소멸시키겠다는 목적도 분명히 있었다. 명은 베트남어로 기록된 책들을 모두 불태우거나 빼앗아 갔다.
이때 가져간 수많은 책들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게 한 권도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폐기했다. 그 결과 베트남은 15세기 이전 모든 문학작품이 사라지는 문화적 대재앙을 겪었다.
이 같은 강압 통치를 실시하기 위해 명은 베트남에 10만 명 이상의 군대를 주둔시켰다. 여기에 베트남 현지인 부대를 조직해 명나라군을 보조했고, 탕롱을 비롯한 군사 요충지들 사이에 도로를 확충해 보급과 신속한 병력 이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베트남 전체가 병영(兵營)이 된 듯한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관리들도 가능하면 중국에서 직접 파견하고 싶어 했지만, 지원자 부족으로 인력이 모자라자 명에 협조적인 자들을 대거 등용해 관직에 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