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 2차 봉기 1) 숭고한 희생

2021. 7. 19. 10:06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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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선 봉기군은 빠르게 세력을 회복했다. 레러이는 새로 모인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한편 성을 쌓고, 기동전에 대비해 곳곳에 식량을 숨겨두었다. 그는 위축된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백성들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기 위해 과감한 군사 작전을 계획했다.

 

이번에는 람선 동쪽 명나라군 주둔지를 공격 목표로 삼았다. 당시 명 원정군은 탕롱 등 홍강 유역에 주로 배치됐고, 중부와 남부의 다수 지역은 귀순한 베트남 군벌들에게 수비를 맡기었다. 이른바 지방군이었는데, 명에서 온 중국인 부대에 비해서는 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레러이가 노린 약한 고리였다.

 

레러이는 병사들을 므엉못 산 입구에 매복시키고 명나라군을 유인하기로 했다. 소수의 람선 병사들이 명나라군 기지를 공격하다 후퇴하자, 아니나 다를까 적 병사들이 맹렬히 추격해왔다.

 

명나라군은 므엉못 산 어귀에서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 세례를 받고 많은 사상자를 남긴 채 달아났다. 레러이는 기세를 몰아 명나라군 주둔지를 공격해 패퇴시키고, 부근의 작은 마을들을 해방시켰다.

 

해체된 줄 알았던 람선 봉기군의 기습 소식에 탕롱의 식민정부는 격분했다. 대규모 진압군이 출동해 람선의 불온세력을 뿌리 뽑기 위한 작전에 들어갔다. 람선 봉기군은 저항했지만 어쩔 수 없이 치링 산으로 또 퇴각했다. 명나라 병사들은 다시 산을 에워쌌다.

 

다행히 식량을 미리 가져다 놓았기 때문에 당장 굶지는 않는다지만, 상황은 레러이에게 매우 불리했다. 명나라군은 이번에는 람선 봉기군을 소탕할 때까지 몇 년이고 포위를 풀지 않을 태세였다. 열악한 밀림 속 환경에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기록에 따르면 레러이는 부하 장군들에게 누군가 자신으로 가장해 명나라군의 주의를 따돌리고 그 틈에 봉기군 주력이 포위망을 뚫고 나가자고 제안했다. 레러이와 누구보다 가까운 측근이자 외모가 가장 닮았던 레라이(Lê Lai)가 흔쾌히 임무를 떠맡았다.

 

레라이는 랑선 출신으로 봉기 계획 초기부터 반란에 가담했고 룽냐이 산에서 조국 독립에 헌신을 맹세한 19명의 동지들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약속대로 모두를 대신해 죽겠다고 나선 것이다.

 

코끼리 석상
코끼리 석상

왕의 황포를 입고 코끼리에 탄 레라이는 자신이 평정왕 레러이라고 외치며 5백 명의 결사대와 함께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레라이는 전투 중 붙잡혀 참수되었는데, 죽기 전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자신이 레러이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 사이 레러이와 봉기군 지휘부는 명나라 병사들이 레라이 쪽으로 몰려간 틈을 타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레러이는 레라이의 희생을 항상 가슴 속에 담고 살았다. 레러이는 운명할 때 자신의 기일 하루 전에 레라이의 제사를 먼저 지내라고 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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