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 2차 봉기 2) “레러이가 살아있다”

2021. 7. 20. 09:24카테고리 없음

728x90

명나라군은 레러이를 처형해 봉기를 완전 진압했다고 믿고 각자의 주둔지로 철수했다. 그리고 레러이도 정적에 쌓인 람선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패배였지만 레러이는 단념하지 않았다. 진지를 보수하고 식량을 구하고 병사들을 다시 모았다. 대지주의 아들로 지역 유력 가문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점이 그의 재기를 도왔다. 람선 봉기군은 다시 세력을 회복해갔다.

 

베트남 람선의 레러이 고향 마을
베트남 람선의 레러이 고향 마을

명나라가 몇 번이나 람선의 저항을 멸절시킬 기회를 놓쳤던 것은 레러이의 인내심과 베트남 백성들의 싸우겠다는 의지뿐 아니라, 명 관료들의 경직된 사고에도 큰 원인이 있었다. 탕롱의 식민정부는 한정된 군사력으로 다수의 원주민을 제압하기 위해 큰 도시에 대부분의 병력을 주둔시켜 방어의 이점을 얻고 반란이 일어나면 병력을 모아 일거에 진압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 거점방어 및 집중공격 전략은 람선 봉기군과 같은 게릴라 부대에게는 효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몇 번의 진압과 재봉기를 반복하면서도 그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 명나라는 쓰라린 패전으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명나라는 1420년 초가 되자 레러이가 살아 있고 람선 봉기군이 다시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타잉화 주둔 명나라군은 이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기습을 준비했는데, 레러이 측에서 첩보를 통해 사전에 알고 벤봉에 병사들을 매복해 역으로 기습했다.

 

명나라군이 전열을 재정비해 몰려오자 봉기군은 람선에서 므엉토이로 다시 바럼으로 진영을 옮겼다. 그 사이 추격해오는 명나라군을 포티랑에서 다시 매복 공격해 천여 명을 사살했다.

 

명나라군의 압박을 물리친 람선 봉기군은 바럼에 근거지를 두고 인근 명나라군 기지들을 쉴 새 없이 습격했다. 람선 봉기군은 전면전을 피해 퇴각하면서도 끝없는 유격전으로 타잉화 성의 거의 전역을 영향력 아래 두게 되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인식한 명 조정은 베트남 주둔 총병관인 진지(陳智)에게 10만 대군을 동원해 레러이를 토벌하라고 명령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