똣동-쭉동 전투 1) 왕통의 5만 지원군
진지 총병관은 상황의 급박함을 잇따라 베이징에 보고했다. 새로 즉위한 명나라 선덕제는 거듭된 패전에 크게 낙담하면서 북쪽 몽골과의 전쟁에 집중하기 위해 골치 아픈 베트남에서 발을 빼고 싶어 했다. 선덕제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영락제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영락제의 몽골 정벌에 여러 차례 동행했고, 그 영향으로 즉위한 뒤에도 북부전선의 안정에 큰 비중을 두었다. 그러나 명의 대신들이 젊은 황제에게 조금만 더 노력하면 베트남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선덕제는 진지를 파직하고 왕통(王通) 장군을 새 총병관으로 임명해 5만 명의 지원군과 함께 베트남에 파견했다. 왕통은 정난지역(靖難之役) 때 전사한 왕진(王眞)의 아들로 일종의 혁명 유자녀였다. 정난지역이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죽고 요절한 태자의..
2021.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