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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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저항과 좌절
쯩짝의 반란 이후에도 베트남인들은 독자적으로 때로는 토착화한 중국 이주민들과 함께 저항을 이어갔다. 중국에서 후한이 망하고 삼국이 병립하는 시기에 베트남 땅은 오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그때 또 한 명의 여성 반란 지도자인 찌에우어우가 나타났다. 찌에우어우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오빠 찌에우꾸옥닷과 함께 살았다. 그녀가 20살 되던 해 오빠가 결혼했는데 올케의 구박이 심하자 살해하고 산속으로 도망쳤다. 힘세고 똑똑했던 찌에우어우는 갖가지 이유로 도망쳐온 장정 천여 명을 휘하에 거느리게 되었다. 그 사이 마을에서는 중국인 관리의 폭정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오빠 찌에우꾸옥닷의 인도로 반란을 일으켰고, 찌에우어우는 산에서 내려와 이에 합류했다. 그녀의 용맹을 보고 주민들은 그녀를 지도자로 세웠다. 찌에우어우는 “..
2021.05.17 -
여성 지도자 쯩짝의 반란
베트남은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기후와 풍습이 낯설어 관리들이 오기를 꺼렸다. 따라서 파견되는 관리들의 질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권세가에게 뇌물을 줘 자리를 얻고는 백성들을 착취해 그 몇 배로 주머니가 채워지면 다시 근무지를 바꿔 달라고 청탁했다. 중국인들이 주로 빼앗아간 물품은 금, 은, 동, 진주, 루비, 상아, 코뿔소 뿔, 거북이 등껍질, 생강, 계피 등이었다. 이런 특산물을 생산하는 지역의 주민들은 채취한 물건을 식량과 교환해야 살 수 있는데 중국인 관리가 세금을 명목으로 모두 가져가 아사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관리들의 악정과 착취는 반감을 불러일으켜 마침내 한나라의 지배에 대한 반란으로 폭발했다. 쯩짝(微側)은 하노이 서북쪽에 있는 메링현 락장의 딸이었다. 쯩짝과 여동생 쯩니 공..
2021.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