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 4차 봉기 1) 남쪽을 친다
개전을 앞두고 열린 람선의 지휘관 회의에서 응우옌칙 장군이 남쪽 응에안 성을 치자고 주장했다. 비록 명나라군 주력이 북쪽 탕롱 인근에 몰려 있지만, 람선 봉기군이 장기 투쟁에 필요한 식량과 무기를 얻으려면 응에안 같은 넓은 평야지대를 먼저 장악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응우옌칙은 응에안 성에서 저항군을 이끌다 한계에 부딪치자 부대 전체를 이끌고 레러이에 합류한 인물이었다. 레러이를 비롯한 모두가 응우옌칙 주장에 동의했다. 결과적으로 명나라는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람선 봉기군이 다깡의 명나라군 기지를 급습하며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1424년) 명나라군은 인근 병력을 총동원해 맞섰지만 다깡을 방어하는 데 실패했다. 이 전투로 명나라군도 람선 봉기군의 남하 의도를 눈치챘다. 진지 총병관은 람선..
2021.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