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청교체 5) 현명했던 광해군
명분을 앞세우는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광해군은 외교에 관한 한 보기 드문 혜안을 가진 왕이었다. 그는 국제정세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정보수집에 노력했다. 누르하치의 건주여진에 시달리던 해서여진 울라 부족은 돌파구를 찾기 위해 1610년 조선에 관직과 교역을 허가해달라고 요청했다. 광해군은 울라 부족장에게 관직을 하사하면서 만주의 정세를 자세히 탐문했다. 다음 해 역관 하세국이 건주여진에 포로로 잡혀있다 돌아오자, 광해군은 그를 환영하며 정6품 사과(司果) 벼슬을 제수했다. 그의 견문과 여진어 실력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광해군은 신하들에게 건주여진에 사람들을 계속 보내 동향을 파악하라고 강조했다. 그들의 정확한 의도를 알아야 상호 오해로 인한 충돌을 막을 수 있었다. 대여진 외교의 최종 목표는 전쟁 예방..
2021.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