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비엣을 세우다
임효는 선정을 베풀어 백월족의 민심을 다스렸고 농업과 교통을 발전시켰다. 조타도 중국 본토가 평화로웠다면 새 정복지의 한 부분을 다스리며 관료로서의 출세를 꿈꾸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절대 권력자인 진시황이 죽고 못난 아들 호해(胡亥)가 황제의 자리를 가로챈 뒤 세상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진승과 오광이 농민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키자 삽시간에 수십만의 무리가 그 아래 모여들었다. 비록 진승과 오광은 몇 달 만에 진나라군에 진압됐지만, 천하 각지에서 반란군이 들고 일어났다. 이 무렵 남쪽에서도 생존을 위한 이합집산이 벌어졌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임효가 병이 들자 조타를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군대를 일으켜 중원과 이어진 길을 끊고 스스로 방비하여 제후들이 일으킨 변고에 대비..
2021.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