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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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교체 6) 만주를 적신 조선인의 피
광해군은 명나라 지원군 사령관인 도원수에 강홍립을 임명했다. 그는 문관이지만 군사 부문 관직을 여럿 거쳤고 무엇보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광해군의 세차 책봉은 받아온 경력이 있어 광해군이 신뢰했다. 조선의 신하들은 명나라를 도와야 한다고 난리를 쳤지만, 막상 후금 원정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강홍립도 병을 이유로 도원수 직을 사양하고 억지로 임명된 뒤에도 사임 의사를 밝혔다. 광해군은 요양한 뒤 떠나라며 강권했다. 전국에서 차출된 병사들은 포수와 사수가 각 3,500명이고 살수가 3,000명이었다. 그런데 명나라군 유정이 포수의 숫자가 적다고 닦달해 1,500명을 증원하여 총 11,500명의 지원군이 꾸려졌다. 광해군은 강홍립이 출정하기 전 ‘관형향배 (觀形向背), 형세를 보아 행동을 결정하라)’..
2021.08.24 -
명청교체 5) 현명했던 광해군
명분을 앞세우는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광해군은 외교에 관한 한 보기 드문 혜안을 가진 왕이었다. 그는 국제정세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정보수집에 노력했다. 누르하치의 건주여진에 시달리던 해서여진 울라 부족은 돌파구를 찾기 위해 1610년 조선에 관직과 교역을 허가해달라고 요청했다. 광해군은 울라 부족장에게 관직을 하사하면서 만주의 정세를 자세히 탐문했다. 다음 해 역관 하세국이 건주여진에 포로로 잡혀있다 돌아오자, 광해군은 그를 환영하며 정6품 사과(司果) 벼슬을 제수했다. 그의 견문과 여진어 실력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광해군은 신하들에게 건주여진에 사람들을 계속 보내 동향을 파악하라고 강조했다. 그들의 정확한 의도를 알아야 상호 오해로 인한 충돌을 막을 수 있었다. 대여진 외교의 최종 목표는 전쟁 예방..
2021.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