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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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전쟁의 먹구름
대내외 정책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 호뀌리는 과거 침략에 대한 복수와 향후 대명 전쟁 시 후방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참파를 공격했다. 참파는 포 비나수르가 죽은 뒤 다시 내분에 시달리고 있었다. 호뀌리는 즉위한 해에 참파를 공략했다가 실패했지만, 2년 뒤 재정비된 군대를 보내 대승을 거두었다. 참파 국왕은 영토 일부를 떼어주며 강화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세가 오른 호뀌리는 아예 참파를 병합할 목적으로 1403년 20만 대군을 일으켜 침략했다. 베트남군은 수도 비자야를 포위했지만 참파군이 끈질기게 저항하고 한 달 만에 군량이 떨어지자 철수하고 말았다. 망국의 위기에 놓인 참파는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도움을 청했고, 명이 이를 받아들여 전쟁을 중단하도록 베트남에 중재했다. 베트남의 약세..
2021.07.13 -
본색을 드러내는 명나라
과감한 개혁으로 국내 질서를 수습한 호뀌리는 점증하는 명나라의 위협에 맞서 국방력을 강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쩐왕조 말기 중원의 패자가 된 명나라는 아직 체제가 불안정하던 건국 초기에는 베트남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명은 홍건적의 난에서 시작된 원나라 축출 전쟁이 한창일 때 베트남에 먼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제의했고, 1368년 주원장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 베트남이 축하 사절을 보내 조공하자 유종(裕宗)을 안남국왕에 봉해 정식 국교를 맺었다. 그러나 국내 혼란을 수습하고 대외팽창이 가능할 만큼 힘을 갖추자 명나라는 강국의 본색을 드러내 베트남에게 갖은 요구를 해오기 시작했다. 운남성에서 일어난 소요를 진압하는 데 필요하다며 군량미 5천 석을 달라고 했고, 광서성 반란 토벌을 이유로 군량미 2만 ..
2021.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