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청교체 11) 끝까지 분열했던 남명정권
명나라가 멸망하자 많은 황족과 관료들이 강남으로 피신했다. 명나라는 양쯔강 이남의 세력으로도 충분히 국가를 재건해 유지할 수 있었다. 과거 금나라에 쫓겨간 송나라도 그러했다. 특히 남경은 명 태조 주원장이 나라를 세운 곳으로 영락제 때 북경으로 수도를 옮긴 뒤에도 특별 관리하던 도시였다. 그곳의 방어시설과 전략물자가 충분했다. 숭정제의 자결 소식이 알려지자 남경에서는 다음 황제로 누구를 옹립하느냐는 논쟁이 시작됐다. 유력한 후보자는 2명이었다. 만력제의 손자인 주유승과 조카인 주상방이었다. 주유승은 탐욕스럽고 음탕하며 불효하는 등 거의 망나니였다. 반면에 주상방은 유능하고 평판이 좋았지만 혈통에서는 조금 밀렸다. 격렬한 당쟁을 벌인 끝에 군사력을 보유한 마사영의 지지를 받고 주유승이 1644년 6월 보위..
2021.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