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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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교체 10) 명나라의 허무한 최후
기근과 수탈이 가중되면서 명나라 전역에 농민들의 반란이 들끓었다. 봉급이 끊긴 지방의 병사들은 굶다 못해 탈영해 반란군에 가담했다. 명나라 조정은 반란을 겨우 진압해갈 뿐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 1636년 청나라로 국호를 바꾼 만주족의 압박이 계속되면서, 그나마 부족한 재정을 국경 방어에 쏟아부어야 했기 때문이다. 농민 반란군 가운데 이자성의 세력이 점점 커졌다. 이자성은 집안이 몰락하고 자신이 일하던 역관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자 어쩔 수 없이 반란에 가담했다. 이자성은 다른 반란군과 달랐다. ‘백성을 구하자’는 명분을 내세워 관청에서 빼앗은 곡식을 빈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자신을 의적으로 선전한 것이다. 이자성은 반란군 두목이 되고도 졸병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어 부하들의 신망을 ..
2021.08.28 -
왕조의 영광은 사라지고
후레왕조는 제5대 성종(聖宗) 때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영화도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497년 성종이 죽자 장남인 헌종(憲宗)이 제위를 물려받았다. 그는 부친 못지않은 현명한 왕이었지만, 불행히도 재위 6년 만에 44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 뒤 헌종의 셋째아들인 숙종(肅宗)과 둘째아들 위목제(威穆帝)가 차례로 즉위했는데, 숙종은 너무 어렸고 위목제는 정사보다 주색에 더 관심이 많았다. 위목제가 자신의 즉위에 반대했던 태황태후와 중신들을 살해하는 등 공포정치를 펼치자 사촌인 양익제(襄翼帝)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했다. 양익제는 전임자인 위목제의 부도덕성을 맹비난했지만, 그 역시 불필요한 토목공사에 백성들을 내몰면서도 본인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 원성을 샀다. 이들 황제들이 특별히 악하거..
2021.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