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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똣동 쭉동 전투 3) 기적 같은 승리
닌끼에우에 도착한 왕통은 베트남군이 버리고 떠난 텅 빈 진영만 발견했다. 허탈해진 왕통은 퇴각한 베트남군이 까오보에 모여 있다는 보고를 받고 군대를 둘로 나누어 자신이 남쪽에서 공격해 올라가고 북쪽으로 우회한 일부 병력이 적의 퇴로를 끊는 협공 작전을 세웠다. 그런데 작전 계획이 세부 내용까지 베트남 첩자들 손에 들어가 까오보에 전달됐다. 이 보안 실패가 명나라군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왕통의 공격 계획을 알게 된 베트남군은 급히 철수했다. 까오보에는 소수의 병력만 남기되 평상시처럼 시간을 알리는 북을 치고 불을 피워 많은 병사들이 밥을 짓는 것처럼 위장했다. 그리고 까오보 바로 남쪽의 똣동(Tốt Động, 陣崒洞)과 쭉동(Chúc Động, 祝洞) 마을에 병사들을 나누어 매복했다. 1426..
2021.07.28 -
긴장된 평화
매번 어깨가 축 처진 패잔병들을 데리고 돌아왔던 람선에 레러이는 이제 개선장군처럼 귀환했다. 레러이가 명나라와 싸워 비겼다는 소식에 용기를 얻은 젊은이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레러이는 그들을 여러 곳에 나누어 비밀리에 훈련시키는 한편, 꼼꼼한 응오뚜(Ngô Từ)를 시켜 군량미 확보에 전력을 기울였다. 휴전 중에도 양측의 탐색과 심리전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레러이는 청항서(請降書)를 써서 명에 보냈다. 청항서에서 레러이는 자신이 군사를 일으킨 것은 지현(知縣)과의 불화 때문이지 명에게 반항할 뜻은 없었다면서 관대한 처분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명은 이를 받아들여 레러이에게 여러 차례 어염과 곡물 농기구를 하사하며 타잉화를 다스리는 관리로 임명하겠다고 회유했다. 레러이는 감읍한 표정을 지으면서 명 관리들을..
2021.07.21 -
독립의 꿈은 홍강에 떨어지고
쯩짝과 그녀의 참모들은 교착 상태를 타개할 방법을 숙고했다. 그러나 이미 견고하게 다져진 한나라군의 방어망을 뚫어낼 묘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까운 시간만 자꾸 흘러갔다. 사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쯩짝의 군대가 개전 초 국경에서부터 한나라군의 배후를 공격해 보급로를 끊고, 예상하지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기습하고, 그래도 패하면 물러나며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우기가 되면 분산된 적을 공격해 이동을 강요하고, 낯선 지형에 고립시켜 섬멸하는 전술을 사용했으면 이길 수도 있었다. 다만 이런 베트남의 유격전과 전격전 청야전술은 그 후 오랜 세월 수많은 피를 대지에 뿌리며 체득한 것이지, 그 이전의 인물이자 실전 경험조차 없는 쯩짝에게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쯩짝의 군대와 마원의 ..
2021.05.14 -
홍강 삼각주의 선사시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베트남 홍강 유역에는 많은 민족들이 살았다. 베트남 등뼈를 이루는 쯔엉썬(長山)산맥과 동쪽 바다 사이에 넓은 평야가 펼쳐진 곳이다. 홍강은 멀리 중국 운남성에서부터 붉은 흙을 품어와 강 하류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래서 우리나라 강원도 면적만큼 넓은 삼각주가 만들어졌다. 이곳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30만 년 전 구석기시대부터였다. 그때는 농사를 지을 줄도 몰랐다. 변화는 아주 더뎠다. 구석기시대 사람이 타임머신을 얻어 타고 몇 만 년 미래로 가도 후손들이 자기와 똑같이 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다 신석기시대에 들어 드디어 농사가 시작됐다. 1만7천 년 전 유적부터 돌을 갈아 만든 쟁기들이 발굴된다. 농사가 시작되면서 홍강 유역은 더욱더 살기 좋은 땅이 되었다. 아열..
2021.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