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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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왕조 황금시대
성종은 안정된 내치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대외 원정에 나섰다. 이는 성종 즉위 후 기대와는 달리 점점 권력에서 멀어진 무신들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리고 대규모 전쟁은 자신이 직접 지휘해 승전의 영광이 정치적 불안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았다. 남쪽의 참파는 명나라의 지원을 기대하며 베트남 후레왕조 혼란기에 조공을 끊었다. 성종 치하에 다시 강성해진 베트남이 조공 재개를 요구하며 양국에 긴장이 높아졌다. 참파 왕은 일단 신복을 받아들였지만, 지나친 조공 요구와 병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고민 끝에 10만의 군대로 베트남에 선제공격했다. 이에 성종은 치밀한 반격을 준비했다. 성종은 그때까지의 인력과 물자 쟁탈전에서 더 나아가 참파의 수도 비자야를 영구 점령해 자국 영토로 편입시킬 생각을 했다. 그..
2021.08.07 -
정신병자 후계자와 레 왕조의 종말
북방의 위협을 제거하고 내정이 안정되자 레호안은 그동안 미뤄왔던 남쪽 참파 원정을 단행했다. 참파는 딘보린 황제가 죽은 뒤 레호안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응우옌박을 도와 수군으로 베트남 수도 호아루를 공격하려다 패배해 물러났었다. 그래도 레호안은 송나라의 침략이 임박해오자 참파와 우호관계를 맺기 위해 사신을 보냈는데 참파 왕이 사신을 옥에 가두었다. 이에 격분한 레호안은 송과의 전쟁이 끝난 다음 해 참파를 공격해 수도 인드라푸라를 점령하고 사원과 궁전을 파괴한 뒤 수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왔다. 베트남이 참파에 가한 최초의 공격이었는데, 충격을 받은 참파는 수도를 남쪽 비자야로 옮겼다. 이때부터 참파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 베트남의 남진에 끝없이 밀리다 17세기 이후 국가로서의 형태마저 잃고 소수민족으..
2021.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