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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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니) 후레왕조의 람낀(藍京)
명나라군을 축출하고 베트남 황제의 자리에 오른 레러이는 고향 람선을 방문해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는 자주독립 정신을 기리고 왕조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람선 마을의 추강(朱江) 북쪽에 사찰을 세운 뒤 그 일대를 람낀(藍京) 즉 ‘푸른 도읍’이라 이름 지었다. 레러이가 사망하자 후손들은 그가 사랑했던 고향으로 옮겨와 묻었고, 그 뒤 람낀은 후레왕조 역대 왕들의 영원한 휴식처가 되었다. 람낀에 왕릉과 사당들이 세워지고, 왕이 해마다 방문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머물 수 있도록 행궁이 건설됐다. 그리고 왕의 거처를 지킬 성벽과 그 외곽의 해자가 들어서면서 람낀을 문자 그대로 작은 도읍의 모습을 갖췄다. 후레왕조가 몰락하면서 람낀의 궁전과 사찰 사당들은 폐허가 됐다. 왕릉도 태조 레러이 등 다섯 황제 ..
2021.08.09 -
어우락으로 새로운 출발
중국 남부에서 이동한 백월족의 한 무리가 베트남 북쪽 고지대에 정착해 어우비엣(Âu Việt, 甌越)을 세웠다. 어우비엣은 세력이 커지면서 반랑과 자주 싸움을 벌였다. 반랑의 18대 흥왕이 향락에 빠져 국사를 소홀히 하자 어우비엣의 툭판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갔다. 나라를 빼앗긴 흥왕은 우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기원전 258년의 일이었다. 툭판은 현명한 지도자였다. 그는 반랑을 점령한 뒤 자신을 안즈엉왕(安陽王)이라 칭하고 국호를 어우락(Âu Lạc, 甌駱)으로 정했다. 어우락은 ‘어우’비엣과 반랑 백성들을 일컫는 ‘락’비엣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정복한 나라와 정복당한 나라가 차별 없이 하나로 융합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 안즈엉왕은 또 반랑 수도를 방문해 ‘맹세의 돌’에 참배하고, 옛 흥왕들..
2021.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