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삼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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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교체 12) 삼번의 난과 배신자 말로
청나라가 명나라를 정복하는 데는 항복한 명나라 장수들의 역할이 컸다. 청나라는 전쟁이 끝난 뒤 이들에게 각지의 총독 순무 등의 자리를 나눠주었다. 특히 공이 큰 오삼계는 운남성, 경중명은 복건성, 상가희는 광동성의 번왕으로 임명했다. 번왕은 온갖 특혜가 보장되는 작위였다. 독자적인 군대를 보유할 수 있는 데다, 정치 경제적으로 독립되고, 세습까지 가능했다. 오삼계 등 번왕들은 영지에서 세력을 더 키워 나갔다. 직할 병력과 세수 지역을 마음대로 넓히고, 주변 성들의 인사까지 개입했다. 대륙 정복 초기에는 청나라 조정이 이를 참아넘겼다. 절대다수인 한족에게 만주족의 지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때까지는 번왕 등 한족 협력자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새로운 황제가 된 강희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2021.08.30 -
명청교체 11) 끝까지 분열했던 남명정권
명나라가 멸망하자 많은 황족과 관료들이 강남으로 피신했다. 명나라는 양쯔강 이남의 세력으로도 충분히 국가를 재건해 유지할 수 있었다. 과거 금나라에 쫓겨간 송나라도 그러했다. 특히 남경은 명 태조 주원장이 나라를 세운 곳으로 영락제 때 북경으로 수도를 옮긴 뒤에도 특별 관리하던 도시였다. 그곳의 방어시설과 전략물자가 충분했다. 숭정제의 자결 소식이 알려지자 남경에서는 다음 황제로 누구를 옹립하느냐는 논쟁이 시작됐다. 유력한 후보자는 2명이었다. 만력제의 손자인 주유승과 조카인 주상방이었다. 주유승은 탐욕스럽고 음탕하며 불효하는 등 거의 망나니였다. 반면에 주상방은 유능하고 평판이 좋았지만 혈통에서는 조금 밀렸다. 격렬한 당쟁을 벌인 끝에 군사력을 보유한 마사영의 지지를 받고 주유승이 1644년 6월 보위..
2021.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