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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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3차 베트남 침략 (6) 대역사의 완성
이제는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우기는 바짝바짝 다가오고, 곳곳에서 베트남군의 습격으로 전사자들이 늘어났다. 몽골군 장군들은 토곤에게 이대로 베트남에 머물다가는 참사를 겪을 것이라고 계속 진언했다. 토곤은 눈앞의 암담한 현실과 이대로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맞닥뜨릴 가혹한 책임추궁 사이에서 갈등했다. 1288년 여름, 토곤은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그는 “베트남은 너무 덥고 습하며 군대는 지쳤다”면서 철군을 선언했다. 몽골군은 두 갈래로 나뉘어 육로로는 랑썬을 향해 그리고 해로로는 바익당 강을 통해 퇴각하기로 했다. 육로로 철수하는 부대는 토곤이, 해로 쪽은 오마르가 지휘했다. 베트남은 몽골군을 순순히 돌려보내지 않았다. 쩐꾸옥뚜언은 병력을 둘로 나누어 사위인 팜응우라오 장군에게 북쪽 국경 쪽에 매복해 몽골..
2021.06.30 -
몽골의 2차 베트남 침략 (3) 마침내 대반격
몽골군은 병력을 대폭 보강한 소게투가 닌빈까지 진출해 있었고, 그곳에서 탕롱 사이에 여러 주둔지들이 홍강을 따라 포진해 있었다. 토곤은 베트남 왕이 타잉화에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고 소게투에게 남쪽으로 군대를 돌려 잔여 세력을 일소하라고 지시했다. 오마르에게도 군함 60척을 이끌고 가 소게투를 돕도록 조치했다. 그런데 재편성을 마친 베트남군이 이들을 피해 배를 타고 홍강을 거슬러 오르며 강 유역의 몽골 주둔지들을 격파하기 시작했다. 쩐꾸옥뚜언은 홍강 하구에서 탕롱 중간에 있는 흥옌의 몽골군 요새를 공격해 점령했다. 깜짝 놀란 토곤이 직접 군대를 끌고 내려왔다. 이때 베트남에 계절이 바뀌어 쩐꾸옥뚜언이 그토록 기다리던 우기가 시작되었다. 장대비가 되었다 보슬비가 되었다를 반복하며 끈질기게 내리는 비로 홍강 ..
2021.06.21 -
압도적 전력 한나라군
쯩짝의 열정과 그녀를 따르는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지만, 베트남이 독립을 쟁취하기에는 국제정세가 너무 나빴다. 쯩짝이 거병했을 때 중국은 이제 막 내전을 수습하고 새 왕조가 들어서 국력이 극성기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쯩짝이 상대해야 할 후한(後漢)의 시조 광무제(光武帝)는 정치와 군사 모든 면에서 걸출한 인물이었다. 기원 전후에 한나라가 외척과 환관의 발호로 혼란스러워지자 재상 왕망이 천자에게 양위를 강요해 신(新)나라를 세웠고, 왕망의 비현실적인 이상정치에 반발해 중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 가운데 한나라 왕족인 유수(劉秀)가 곤양 전투에서 포위된 성을 홀로 빠져 나와 소수의 원군을 모은 뒤 적의 중심부를 타격하는 대담한 작전으로 왕망의 40만 대군을 와해시켰다. 유수는..
2021.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