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난지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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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전투 3) 쓰엉지앙 전투
적의 병력을 소모시키려고 매복 작전을 펼쳤던 베트남군은 적장의 사살이라는 기대도 안했던 초대형 전과를 거두었다. 토끼를 잡으려고 펴놓은 그물에 범이 걸린 것이다. 반면에 명나라군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형국이었다. 주력부대가 허겁지겁 쫓아왔지만 이미 유승을 비롯한 다수의 장군들이 전사한 뒤였다. 혼전 중에 상당한 인명 손실을 입으며 명나라군은 부사령관 양명(梁銘) 장군의 지휘로 겨우겨우 치랑 협곡을 통과할 수 있었다. 남행길을 서두르던 명나라군은 닷새 뒤 껀쩜에 매복해있던 베트남 3만 대군의 공격을 받아 2만 명 이상이 죽거나 포로가 되는 피해를 입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전투에서 양명 부사령관마저 목숨을 잃었다. 이제 명나라 지원군의 지휘는 도독 최취(崔聚)의 손에 맡겨졌다. 최취는 영..
2021.08.01 -
똣동-쭉동 전투 1) 왕통의 5만 지원군
진지 총병관은 상황의 급박함을 잇따라 베이징에 보고했다. 새로 즉위한 명나라 선덕제는 거듭된 패전에 크게 낙담하면서 북쪽 몽골과의 전쟁에 집중하기 위해 골치 아픈 베트남에서 발을 빼고 싶어 했다. 선덕제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영락제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영락제의 몽골 정벌에 여러 차례 동행했고, 그 영향으로 즉위한 뒤에도 북부전선의 안정에 큰 비중을 두었다. 그러나 명의 대신들이 젊은 황제에게 조금만 더 노력하면 베트남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선덕제는 진지를 파직하고 왕통(王通) 장군을 새 총병관으로 임명해 5만 명의 지원군과 함께 베트남에 파견했다. 왕통은 정난지역(靖難之役) 때 전사한 왕진(王眞)의 아들로 일종의 혁명 유자녀였다. 정난지역이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죽고 요절한 태자의..
2021.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