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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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약한 왕들과 권력투쟁
후레(後黎)왕조는 1433년 태조(太祖) 레러이가 사망하고 궁중 유혈사태와 반정으로 큰 혼란을 겪는다. 여기에는 왕자들의 권력욕뿐 아니라, 타잉화 출신의 무장인 개국공신들과 왕이 중앙집권을 위해 힘을 실어주려 한 탕롱 출신의 유학자 문관들의 세력다툼이 근저에 깔려 있었다. 2대 황제 태종(太宗)은 즉위 당시 겨우 11살 어린이였다. 태종은 아버지 레러이의 충신인 레쌋을 섭정으로 임명하고 모든 것을 의지했다. 레쌋은 피 흘려 세운 왕조에 무임승차한 눈엣가시 같은 문신들을 차근차근 제거하고 자기 측근들로 대체했다. 레쌋과 그의 후임자인 레응언 모두 무학자들로 유교보다는 어릴 때부터 익숙한 불교에 기울어져 있었다. 태종이 장성하자 개국공신들의 권력독점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문신들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는 유학..
2021.08.05 -
조심스러웠던 리(李) 왕조
전레(前黎) 왕조는 롱딩의 학정 때문에 30년 만에 무너졌다. 롱딩이 죽자 신하들은 리꽁원(李公蘊)을 새 황제로 추대했다. 베트남 최초의 장기 왕조인 리(李) 왕조가 시작된 것이다. 리꽁원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세 살 때 어머니는 그를 절에 데려가 승려의 양자로 입적시켰고, 이후 불제자로서 교육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리꽁원은 장성한 뒤 수도인 호아루로 가 궁궐수비대에 들어갔는데 오늘날의 군종장교 역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온화하고 성실한 성품의 그는 승진을 거듭하더니 마침내 레호안 황제의 눈에 들어 부마가 되고 궁궐 수비를 책임지는 지위에까지 올랐다. 리꽁원이 황제로 선택된 것은 그가 누구도 적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정과 군대의 실력자들이 그가 황제가 돼도..
2021.05.30 -
야만스러워 보였던 황제
드디어 송나라와의 전쟁이 끝났다. 레호안은 2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황제가 시해되고 내전이 벌어지고 새 왕조를 열고 강국인 송의 침략까지 겪으며 모든 위기들을 극복해냈다. 송나라군을 국경 밖으로 몰아내고 수도 호아루로 개선한 레호안은 두옹반응아(楊雲娥)를 정식 황후로 맞아들였다. 기록에는 없지만 두옹반응아는 예쁜 구름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고 재능 있는 여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태생으로 당시 베트남 최남단 아이주의 부장(副將) 딸이라거나 딘보린과 같은 고향 출신이었다는 설이 엇갈리는데, 어느 쪽이든 집안의 힘으로 황후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신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두 황제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후세 유학자들에게 악녀로 평가되었지만, 두옹반응아는 뛰어난 처세와 정치력으로 자녀들을 ..
2021.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