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색을 드러내는 명나라
과감한 개혁으로 국내 질서를 수습한 호뀌리는 점증하는 명나라의 위협에 맞서 국방력을 강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쩐왕조 말기 중원의 패자가 된 명나라는 아직 체제가 불안정하던 건국 초기에는 베트남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명은 홍건적의 난에서 시작된 원나라 축출 전쟁이 한창일 때 베트남에 먼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제의했고, 1368년 주원장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 베트남이 축하 사절을 보내 조공하자 유종(裕宗)을 안남국왕에 봉해 정식 국교를 맺었다. 그러나 국내 혼란을 수습하고 대외팽창이 가능할 만큼 힘을 갖추자 명나라는 강국의 본색을 드러내 베트남에게 갖은 요구를 해오기 시작했다. 운남성에서 일어난 소요를 진압하는 데 필요하다며 군량미 5천 석을 달라고 했고, 광서성 반란 토벌을 이유로 군량미 2만 ..
2021.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