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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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한 무제의 침략
왕과 태후의 매국 행위로 나라가 통째로 넘어갈 판국이었다. 승상 르기아를 중심으로 한 백월족 귀족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남비엣 조정에서는 친한파(親漢派)와 반한파(反漢派) 사이에 격렬한 정쟁이 벌어졌다. 승상 르기아는 남비엣의 세 임금을 섬긴 노신으로 집안에 고관대작이 70명이 넘었고 왕실과 몇 겹의 혼인 관계를 맺은 명문가 출신이었다. 나라에 그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많아 왕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태후가 르기아를 죽이자고 재촉했지만, 애왕과 한나라 사신들은 그를 해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 무제는 답답한 상황을 보고받고 한천추에게 병사 2천 명을 주며 남비엣으로 가 르기아를 처단하라고 지시했다. 한 무제는 남비엣 합병이 단지 정쟁 때문에 미뤄지는 것이고 르기아만 체포하면 걸림돌이 모두 사라질 ..
2021.05.11 -
최초의 국가 반랑
“주나라 장왕 때 베트남에 마술로 각 부락을 제압한 기인이 있었는데, 그가 스스로 흥왕(Hùng Vương, 雄王)이라 칭하고 나라 이름을 반랑으로 지었다.” 14세기에 쓴 베트남의 역사서 「월사략」에 나오는 내용이다. 중국 주나라 장왕 때라면 B.C. 7세기로 지금부터 2,700년 전이다. 학자들은 실제로 이때쯤 반랑이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신기하게도 고조선의 건국 시기와 비슷하다. 흥왕이 마술로 각 부락을 제압했다는 「월사략」의 기록은 단군왕검의 ‘단군’이 제사장을 의미하는 것과 맥이 통해 흥미롭다. 자연의 힘에 압도되고 항상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야 했던 고대인들은 초월적인 힘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능숙한 솜씨로 신비한 현상을 만들어 보이며 그 ..
2021.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