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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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한 베트남의 패배
참파의 포 비나수르는 베트남의 혼란을 지켜보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비록 승리했지만 1368년 베트남의 대반격을 경험한 포 비나수르의 공세는 위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간신히 목숨을 구한 즈엉녓레의 어머니 등 추종세력들이 참파로 달아나 쿠데타의 부당성을 호소하며 베트남 공격의 길 안내를 자청했다. 덕분에 포 비나수르는 국경지대가 아닌 베트남의 수도 탕롱을 직접 노릴 수 있게 되었다. 공격을 재개한 참파군은 1371년 배를 타고 베트남 북부에 상륙한 뒤 탕롱성을 공격했다. 잘 훈련된 참파군의 기세에 눌린 예종(藝宗)과 베트남 조정은 탕롱을 버리고 달아났다. 베트남 수도가 참파에 함락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참파군은 궁궐을 약탈하고 수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끌고 갔다. 참파군이 철수하자 예종은 ..
2021.07.09 -
몽골의 2차 베트남 침략 (2) 피로써 시간을 벌다
암울한 전황에도 불구하고 자원입대가 줄을 이어 베트남군은 단기간에 25만 대병력을 다시 편성할 수 있었다. 이를 기초로 쩐꾸옥뚜언은 전세의 반전을 시도했다. 쩐꾸옥뚜언와 그의 사위 팜응우라오 장군은 수백 척의 배에 병사들을 태워 은밀히 강을 건넌 뒤 반끼엡에 있는 몽골군 보급기지를 기습했다. 토곤은 베트남을 공격하면서 1차 침입 실패의 원인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중국 국경에서 최전선까지 15km마다 식량 보급기지를 세웠는데 그 중심지가 반끼엡이었다. 베트남군이 반끼엡의 몽골군 기지를 점령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를 기점으로 몽골군 보급선에 대한 전방위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총력전이었다. 쩐 왕족의 사병, 향군, 부락민 등 너나없이 여건에 맞춰 몽골군의 창고와 수송부대를 공격했고, 그만한 힘이 없으면 ..
2021.06.20 -
바익당강에서 끊은 천년의 사슬
베트남이 중국의 혼란기를 맞아 응오꾸엔 같은 천재적인 전략가의 지휘를 받게 된 것은 독립을 위한 하늘의 도움이었다. 그는 키가 크고 건장하여 어릴 적부터 장수로 촉망받았고 지력과 담력까지 겸비한 인물이었다. 응오꾸엔의 아버지 역시 유력한 지방 호족으로 독립운동의 열렬한 후원자였다. 응오꾸엔은 33살에 즈엉딩응에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남한군을 몰아내는 데 큰 공을 세웠고, 즈엉딩응에는 그의 능력을 높이 사 자신의 사위로 삼았다. 즈엉딩응에는 응오꾸엔을 계속 승진시켜 아이주의 통치를 맡겼는데, 그곳은 즈엉딩응에의 고향이자 군사력의 기반이었다. 양아버지 즈엉딩응에를 암살한 끼에우꽁띠엔은 처남 응오꾸엔이 봉기하자 위협을 느끼고 남한에 스스로 신하가 될 것을 청하는 매국적인 행동을 했다. 끼에우꽁띠엔이 구원을 요..
2021.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