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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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왕조의 초라한 종말
타잉화에서는 응우옌낌이 차근차근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응우옌낌은 남쪽에 있는 응에안을 점령해 배후를 튼튼히 다진 뒤 북부 탕롱을 향해 진격했다. 타잉화의 경계를 넘어 썬남까지 육박해 들어갔지만, 위장 투항한 막당중의 부하 장군에게 응우옌낌이 독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응우옌낌의 사위 찡끼엠(鄭檢)은 급히 군사들을 수습해 타잉화로 퇴각했고 병권을 장악해 장인의 빈자리를 차지했다. 이로부터 약 60년 동안 북쪽에는 막씨왕조 남쪽에는 찡씨 세력이 자리를 잡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두 세력은 서로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았지만, 막왕조가 찡씨의 영역으로 쳐들어가는 경우가 좀 더 많았다. 이는 막왕조가 정치경제의 중심지인 홍강 유역에 자리 잡아 자원 확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세는 1562년 ..
2021.08.17 -
정보 수집에 미숙했던 황제의 치욕
명나라의 베트남 정벌 논쟁이 막 사그라들 무렵 갑자기 막당중이 사신을 보내 투항하고 토지와 호구를 기록해 명의 처분을 따르겠다고 밝혀왔다. 명으로서는 기대도 안 했던 막당중의 선물을 받은 셈이었다. 앞이 캄캄한 원정의 부담에서 벗어나면서도 실리도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명나라 관리 모백온은 광서성으로 내려가 막당중에게 귀순하면 죄를 용서하겠다는 격문을 보냈다. 막당중은 관리들을 데리고 국경인 진남관(鎭南關)에 도착했다. 그리고 죄인처럼 머리를 풀고 목에 줄을 맨 뒤 맨발로 기어가 단상에 머리를 찧으며 항복의 표(表)를 올렸다. 막당중은 토지와 인구 대장을 바치고 국경 5개 지역을 할양하며 영원히 신복하겠다고 청하였다. 모백온은 막당중의 죄를 사면하고, 돌아가 황제의 명을 기다리도록 했다. 모백온의 상..
2021.08.15 -
무섭게 일어선 참파
참파는 고질적인 분열로 스스로의 발전을 가로막은 나라였다. 오늘날 베트남 중부 평야지대에 있던 참파는 비옥한 토지 덕분에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했다. 그리고 멀리 중동에서부터 중국을 잇는 해상 중계 무역은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해주었다. 경제력으로 치면 베트남을 능가하는 참파였지만 1300년 동안 15개 왕조가 교체될 정도로 왕위 다툼이 끝없이 반복됐다. 참파를 단일 국가로 보지 않고 여러 국가의 연합체로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더구나 14세기 이슬람교가 들어오면서 전통 힌두교와 종교 갈등까지 벌어졌다. 수십 년간 유례없는 혼돈 상태가 계속됐다. 그러다 1360년 이슬람 세력이 지지하는 포 비나수르가 오랜 내전을 끝내고 모든 경쟁세력을 하나의 체제로 묶어내며 왕위에 올랐다. 베트남에서는 포 비..
2021.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