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2)
-
몽골의 3차 베트남 침략 (7) 전쟁 이후
육로로 퇴각하던 몽골군의 운명도 순탄치 않았다. 베트남군의 매복 공격에 시달리던 토곤은 병력을 소규모로 산개해 후퇴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유목민족 군대의 특기로 농경민족을 침략할 때 정규군과의 교전을 피하고 싶으면 수십 명 단위로 흩어져 지나친 뒤 순식간에 다시 집결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전술은 소규모 부대가 마주치는 현지 주민들이 싸울 능력과 의지가 없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몽골 병사들 앞에는 결사적으로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베트남 농민들이 있었다. 2차 대몽항전이 끝나고 몽골 포로들을 돌려보냈다 호의를 침략과 학살로 되돌려 받은 베트남인들은 몽골 패잔병을 살려 보내지 말아야 할 절실한 이유가 있었다. 결국 몽골 육군 중 살아서 국경을 넘어간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토곤은 겨우 목숨을 건져 귀국했..
2021.07.02 -
몽골제국의 수치
2차 베트남 침략 실패는 몽골제국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겼다.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면서 이처럼 작은 나라에게 두 차례나 무참하게 패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연이은 패전으로 인한 인적 물적 손실은 원나라가 일본 원정을 중단해야 할 정도로 막대했다. 원나라의 1차 베트남 침략이 실패한 직후인 1260년 지금의 팔레스타인 갈릴리에서 일한국의 몽골군이 이집트의 노예전사 집단인 맘루크 부대와 격돌해 참패했다. 이를 전장에 흐르던 시냇물의 이름을 따 아인잘루트 전투라고 부르는데, 이로써 몽골의 시리아와 이집트 정복이 좌절됨은 물론 서진 자체가 멈췄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그러나 아인잘루트 전투는 몽골군 병력이 1만 명밖에 안 됐다는 점에서 베트남 · 몽골 전쟁과는 규모를 비교할 수 없었다. 이집트군의 병력은 몽골군..
2021.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