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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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식민지배 1) 수탈과 문화파괴
쩐왕조 복원이라는 명나라의 개전 명분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베트남인들을 위무하기 위해 3년간 조세와 부역을 면제해주겠다고 선포했지만 호왕조의 잔여 세력이 소멸하자 이 역시 흐지부지됐다. 그리고 중국에서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관리들이 떼 지어 오면서 본격적인 수탈이 시작됐다. 애당초 명나라 군대가 좋은 일을 하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명의 식민정부는 반란을 우려해 베트남인들이 무기를 제조하거나 소지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리고 저항의 수단이 제거된 베트남인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했다. 병합 1년도 안 돼 베트남에서 거둬들인 세금이 우마 24만 마리, 벼 1360만 석, 배 8670척 등이었다. 가난한 산악국가였던 중세 베트남의 경제를 거의 거덜 내다시피 한 것이다. 16세부터 60세까지 모든 남자는 군역과 부역..
2021.07.15 -
쩐왕조의 비극적 종말
참파와의 전쟁은 끝났지만, 왕조를 지키려는 자와 바꾸려는 자들의 싸움은 이제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레뀌리는 태상황 예종(藝宗)을 부추겨 정적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거나 암살하거나 자결을 강요하는 등 갖은 방법으로 제거해갔다. 판단력을 잃고 휘둘리던 예종이 그나마 사망하자 레뀌리는 더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 레뀌리는 임금인 순종(順宗)을 겁박해 1397년 수도를 탕롱에서 자신의 세력 근거지인 타잉화로 옮겼다. 그리고 천도 다음해 순종에게 이제 겨우 세 살인 태자를 왕위에 올리고 태상황으로 물러나도록 강요했다. 순종은 모든 요구에 순순히 따르며 목숨만이라도 부지하려 했지만, 이제 새 왕조를 꿈꾸는 레뀌리는 권력에 위협이 될 작은 가능성마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퇴위한 뒤 도교사원에 들어가 있던 순종은 레..
2021.07.11 -
베트남 민족은 왜 사라지지 않았나
베트남이 무려 천 년 동안이나 중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도 민족 정체성을 잃지 않고 끝내 독립을 쟁취한 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는 중국의 대 베트남 정책에도 한 원인이 있었다. 역대 중국 왕조는 베트남을 남방의 진귀한 산물의 공급원이자 동남아시아 무역 중계지라는 전략적 가치로 보았지 베트남인들을 교화시켜 통합하는 데는 큰 관심이 없었다. 더구나 무역 중심지가 베트남 홍강 하류에서 지금의 중국 광저우로 옮겨가자 베트남을 주변 민족의 중국 공격을 막는 완충지대 정도로 여기게 되었다. 중국 측 사가들은 베트남인의 무력저항들을 현지 관리의 무능과 정책의 미비로 인한 일시적 사건이었던 것으로 치부했다. 예를 들어 쯩 자매의 봉기를 ‘이상한 베트남 여자의 반란’으로 치부하는 식이었다. 중국에서 파견된 태수들..
2021.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