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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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교체 9) 충신을 버려 망국을 재촉하다
문맹이며 정사에 관심이 없어 목수일만 하던 명나라 천계제가 1627년 사망했다. 뱃놀이를 하다 물에 빠진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했다. 천계제는 숨지기 전 이복동생 숭정제에게 “너는 나보다 재능이 많으니 나라를 잘 다스릴 거다”라면서 제위를 물려줬다. 숭정제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중국의 역대 황제들 가운데 그보다 부지런했던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만약 평화 시기였다면 많은 업적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힘으로 돌이키기에는 명나라의 국운이 너무 기울었다. 그는 즉위 초에 환관 위충현 일당을 제거해 조정의 기강을 다잡았다. 솔선수범해 국고를 아끼고, 그래도 재정이 부족하자 세금을 올리며 “내 백성들에게 1년만 폐를 끼치겠다”고 호소하는 겸허함도 갖췄다. 후금 침략에 맞서기 위해 서양의 과학 기술을 도..
2021.08.27 -
명청교체 3) 명나라의 첫 패배, 무순 전투
누르하치가 이끄는 후금군은 1618년 4월 15일 무순성을 포위했다. 성 아래 새까맣게 모여둔 후금군을 보고 겁이 난 무순성 성주 이영방은 얼른 항복했다. 무혈 입성한 누르하치는 성안에 있던 명나라 상인 10여 명을 풀어줬다. 그는 상인들에게 여비까지 챙겨주며 고향에 돌아가 후금의 ‘칠대한’ 문서를 퍼뜨리라고 말했다. 사실 시키지 않더라도 상인들이 돌아가면 이 엄청난 난리에 대해 떠들텐데, 칠대한 문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금이 악당이라 전쟁이 난 게 아니라 명나라 조정의 박해 때문이라는 선전전의 일환이었다. 누르하치는 무순 성벽을 무너뜨린 뒤 주민들을 모두 포로로 끌고 갔다. 인구가 부족한 후금에게 땅보다는 사람이 더 귀한 자원이었다. 며칠 뒤 총병 장승음이 병사들을 이끌고 추격해 왔다. 그러..
2021.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