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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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의 영웅이 살아남는 법
쩐꾸옥뚜언은 인종과 그 뒤를 이은 영종을 보필하다 말년에 자신의 농장이 있는 반끼엡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냈다. 수십 년간 전군을 지휘했고 외적을 세 차례나 막아내 만백성의 존경을 받는 그였지만 왕에 대한 충성과 겸양을 잃지 않았다. 왕이 그에게 어떠한 호칭이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윤허했지만, 왕이 직접 정해준 ‘흥다오브엉(興道王)’ 외에 다른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쩐꾸옥뚜언은 뜰에서 산책을 하다 차남에게 “진정한 권력자라면 나라를 얻어 후세에게 물려줘야 한다는데 그런 야심이 있느냐”고 물었다. 차남이 무릎을 꿇고 “송나라 태조도 미천한 농민이었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스로 나라를 세웠습니다”라고 답하자, 갑자기 칼을 빼어들고 “내 아들이 역적이었다”며 내리치려 했다. 가족들..
2021.07.04 -
서툴렀던 응오(吳) 왕조
해방의 환희가 잦아든 뒤 찾아온 베트남의 현실은 꿈꾸어왔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응오꾸엔은 왕이 되었음을 선포하고 새로운 율령들을 잇달아 공포했다. 그러나 문무관직과 각종 의식, 관리들의 복제까지 중국 것을 거의 모방하다시피 했다. 정치적 예속은 극복했지만 스스로 통치체제를 정립할 역량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불완전한 국가 통합과 이로 인한 혼란이었다. 중국의 분열을 틈타 베트남 각지에서 세력을 키워온 군벌들은 어제까지 동료 장군이었던 응오꾸엔에게 존경심을 보일지언정 왕조에 충성하는 것에는 주저했다. 군벌들은 응오 왕조가 수립된 뒤에도 각자의 군사력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왕권을 위협했다. 비엣족 거주지 밖의 소수민족들은 사실상 독립 상태로 중앙 행정력이 거의 미치지 못했다. 불과 ..
2021.05.21 -
영웅들 독립을 꿈꾸다
중국 최남부인 청해주의 절도사 유엄이 후양 황제에게 왕으로 책봉해달라고 요구했다 거절당했다. 그러자 유엄은 스스로 제위에 올랐고 국호를 남한(南漢)이라 정했다. 남한은 지금의 중국 광동성과 광서성에 걸친 한반도 면적의 약 두 배쯤 되는 지역을 차지해 당시 중국을 할거했던 여러 국가들 중에는 비교적 약체였다. 그러나 베트남에는 위협적인 존재여서 쿡씨 정권은 중국 화북의 후양과 관계를 강화하며 남한의 세력 확장을 경계했다. 호시탐탐 베트남 침략을 노리던 남한의 유엄 황제는 후양 왕조가 후당으로 교체되며 중원이 혼란에 휩싸이자 이를 기회로 보고 군사행동을 개시했다. 남한군은 일거에 쿡씨 정권을 격파하고 그 수장을 압송했다. 남한의 베트남 점령은 일 년여에 그치고 말았다. 쿡씨 정권의 장군이었던 즈엉딩응에(楊廷..
2021.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