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안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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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 중국을 침략하다
송나라에 왕안석이 있었다면 베트남에는 리트엉끼엣(李常傑)이 있었다. 그의 본명은 응우옌뚜언이다. 하급 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17살 때 기병 장교로 임관한 뒤 승진을 거듭해 국왕경호대장이 되었다. 뛰어난 용맹과 지략과 충성심을 겸비한 그는 왕실의 성(姓)을 하사받아 리트엉끼엣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모든 조정 신료들로부터도 깊은 신뢰를 받았다. 성종(聖宗)이 어린 아들을 남기고 죽자 대비가 섭정을 했지만 국가의 주요 정책은 리트엉끼엣이 사실상 모두 결정했다. 리트엉끼엣은 송나라에 보내놓았던 첩자들로부터 광서성 성도인 옹주(邕州)를 비롯해 중국 국경도시들에 병력과 물자가 집결하는 등 수상한 움직임이 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는 깊은 고민 끝에 선제공격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송의 침략이 예정된 것이라면..
2021.06.01 -
국력을 회복한 송나라의 재침 준비
베트남 리 태조가 사망한 1028년, 지방의 왕으로 봉해져 있던 세 왕자가 맏형인 태자에게 도전해 군사를 일으켰다. 군부의 도움으로 이를 겨우 진압하고 태자가 즉위했는데, 그가 태종(太宗)이다. 태종은 왕권 강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참파를 공격해 대승을 거두었다. 조공을 하지 않는다는 외교 문제를 명분으로 삼았지만, 무력을 과시해 국내 제후들의 신복을 받으려는 목적이 더 컸다. 태종에 이어 성종(聖宗)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성종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참파를 공격해 꽝빈과 꽝찌 두 성을 할양받았다. 이때부터 베트남 영토의 ‘남진’이 시작됐다. 성종이 사망하고 겨우 일곱 살인 태자가 즉위했지만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아무런 잡음도 없었다. 그만큼 리 왕조 초기 황제들의 노력으로 왕권의 토대가 탄탄해진 ..
2021.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