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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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2차 베트남 침략 (4) 물러가는 적들
수세에 몰린 몽골군은 몇몇 성들에 틀어박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보급선이 끊어진데다 베트남의 청야전술로 어디서도 쌀 한 톨 구할 수 없었던 몽골 병사들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우기가 계속되면서 진중에 전염병도 퍼졌다. 토곤이 1차 침략의 실패 원인을 분석해 원정군에 중국 의사들을 대거 동행시켰지만 근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토곤은 결국 철군을 결심했다. 몽골군은 중국 광서성과 운남성의 본래 주둔지를 향해 북동쪽과 북서쪽 두 갈래로 나뉘어 빠르게 퇴각했다. 토곤 자신은 킵차크 출신 시도르가 이끄는 수군의 배를 타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육로로 이동한 대부분의 부대는 베트남군의 격렬한 반격에 시달렸다. 쩐꾸옥뚜언은 홍강 북쪽에 5만 명의 병력을 보내 몽골군의 앞을 가로막았다. 반끼엡, 노이방..
2021.06.22 -
싸우자는 몽골, 피하려는 베트남
송나라가 마침내 무릎을 꿇자 이제 다음 목표는 베트남이었다. 쿠빌라이 대칸이 젊은 시절 대리국을 정복하면서 화려한 군사 경력의 막을 열었기 때문에, 그때 고락을 같이 했던 운남 주둔군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 군대가 베트남에서 겪은 패배를 쿠빌라이는 자신의 치욕으로 여겨 복수하고 싶어 했다. 그런 개인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몽골에게는 동남아시아로 정복지를 넓혀 갈 전진기지로서 베트남이 꼭 필요했다. 베트남을 속국으로 만든다면 열대지방의 기후와 지형에 익숙한 현지인들을 용병으로 징발할 수 있고, 바다에 서툰 몽골군의 약점을 베트남 수군으로 보완해 남중국해를 지배할 수 있었다. 베트남의 입장에서는 몽골에 패할 경우 경제적 수탈에 그치지 않고 전쟁도구로 내몰려 소모될 운명이었기 때문에 민족의 존망을 걸고 저..
2021.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