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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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전투 4) 무너지는 명나라군
최취는 운남총병관 목성(沐晟)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걸었다. 목성은 5만 대군을 이끌고 레화 관문에 도착해 있었다. 목성은 명나라 개국공신인 아버지 목영 장군에 이어 운남을 반독립 상태로 지배하고 있었다. 명나라 조정은 직접 관리가 어려운 이 변방을 목씨 집안에 맡기고 대신 가족에게 벼슬을 주어 인질로 수도에 잡아두었다. 목성도 베트남군에 승리하기를 원했지만 이를 위해 자신의 병사들을 희생시킬 생각은 없었다. 만약 막대한 인명피해로 운남의 민심이 흔들리면 자신의 지위도 보장받기 힘들었다. 이 같은 상황을 토대로 레러이는 목성이 유승의 전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쩐반과 팜반싸오 찡카 응우옌친 레쿠엔 등 쟁쟁한 장군들을 보내면서도 절대 접전하지 말고 대치 상태를 ..
2021.08.02 -
베트남에 몰려오는 전쟁의 먹구름
베트남은 호라즘처럼 몽골 상인들을 학살하거나 버마처럼 멋모르고 몽골을 선제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몽골과의 충돌을 피하려 필사적인 외교 노력을 펼쳤다. 그러나 베트남이 애를 쓴다고 피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다. 몽골의 몽케 대칸은 송나라에 대한 두 번째 침략을 시작하기 한 해 전인 1257년 운남 주둔군 사령관 우량하타이에게 베트남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베트남을 점령해 남쪽에서 송을 치는 또 하나의 공격로를 확보하고 베트남 군민을 대송전쟁에 동원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량하타이는 국경에 3만 대군을 집결시켜 놓고 베트남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칠 것과 송을 공격할 길을 빌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것을 사실상의 항복 요구로 받아들인 베트남 조정은 몽골 사신을 감옥에 가두고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 베트남의 ..
2021.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