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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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聖宗), 베트남의 세종대왕
우리나라에 세종대왕이 있다면, 베트남 최고 성군은 단연 후레왕조의 성종(聖宗)이라 할 수 있다. 성종은 개국공신 장군들의 추대로 황제가 됐지만 성격과 이념이 그들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왕위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학문에 몰두했고 특히 유학에 깊은 조예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사변적인 학자에 머물지 않고, 황제가 신하들의 파벌싸움을 방치하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똑똑히 지켜보면서 이를 극복할 정치적 식견을 쌓아왔다. 성종은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황제의 권한을 강화시켜 나갔다. 먼저 응이전이 설치했던 육부(六府)를 황제의 직속기관으로 만들어 대장군과 대신들의 권한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육과(六科)는 이·호·예·병·형·공 체제로 개편해 권한이 강해진 ..
2021.08.06 -
호(胡)왕조의 과감한 개혁
쩐왕조 말기의 오랜 혼란은 필연적으로 권문세가에 의한 토지겸병을 불러왔다. 유력자들이 땅을 뺐고 개간해 늘려가면서 많은 백성들은 유랑하거나 농노로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세금을 낼 공전(公田)과 병역에 동원할 장정들을 확보하지 못하면 새 왕조의 재정을 충당하고 외적의 침략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호뀌리는 과감하게 한전법(限田法)을 실시했다. 모든 귀족과 관리 백성들에게 신분에 따라 토지 소유의 한도를 정해 주었다. 그리고 5년마다 자기 땅 위에 이름과 면적을 적은 푯말을 세우도록 하고 푯말이 없는 땅은 모조리 압수해 국유지로 만들었다. 쩐씨 왕족을 비롯한 구 지배층의 물적 토대가 한꺼번에 붕괴됐고, 호뀌리 정권에 도전할 신흥세력의 등장도 예방할 수 있었다. 대신 국고에는 엄청난 세수가 쏟아져 들어왔고,..
2021.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