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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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 4차 봉기 1) 남쪽을 친다
개전을 앞두고 열린 람선의 지휘관 회의에서 응우옌칙 장군이 남쪽 응에안 성을 치자고 주장했다. 비록 명나라군 주력이 북쪽 탕롱 인근에 몰려 있지만, 람선 봉기군이 장기 투쟁에 필요한 식량과 무기를 얻으려면 응에안 같은 넓은 평야지대를 먼저 장악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응우옌칙은 응에안 성에서 저항군을 이끌다 한계에 부딪치자 부대 전체를 이끌고 레러이에 합류한 인물이었다. 레러이를 비롯한 모두가 응우옌칙 주장에 동의했다. 결과적으로 명나라는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람선 봉기군이 다깡의 명나라군 기지를 급습하며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1424년) 명나라군은 인근 병력을 총동원해 맞섰지만 다깡을 방어하는 데 실패했다. 이 전투로 명나라군도 람선 봉기군의 남하 의도를 눈치챘다. 진지 총병관은 람선..
2021.07.23 -
무너진 송나라 원정군
980년 여름 송나라군 3만 명이 국경을 넘었다. 후인보가 이끄는 중군은 해안을 따라 이동하다 하롱을 지나 바익당 강 동쪽 기슭에 도착했다. 여기서 후인보는 좌군에 해당하는 수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송나라 우군은 손전흥의 지휘 아래 베트남 동북부 국경인 랑선을 통과해 치랑에 당도했다. 베트남군이 이들을 막아 보려 했지만 2천여 명의 전사자를 낸 채 연전연패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송나라군은 중군 · 우군과 수군을 한데 모아 지금의 하노이인 다이라를 먼저 점령한 뒤 수도 호아루를 향해 남쪽으로 진격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유징 제독의 수군이 바다를 거쳐 바익당강을 거슬러 북상하려고 했지만 강어귀에서 저지됐다. 사서는 이를 송의 군선들이 강바닥에 박아놓은 말뚝에 걸..
2021.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