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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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파를 만만히 보았다가
몽골은 먼저 베트남 남쪽의 참파부터 공격했다. 몽골은 참파에 행중서성(行中書省) 즉 중앙정부기관인 중서성의 출장소를 설치했다. 이는 남해무역을 장악하고 장차 벌어질 전쟁에 필요한 식량과 병력을 차출하겠다는 의도였다. 베트남을 고립시키고 남북에서 동시에 공격하겠다는 군사적 목적도 있었다. 멀쩡한 남의 나라에 지방관청을 설치했으니 참파가 두 눈을 뜨고 이를 지켜볼 수는 없었다. 인적 물적 수탈은 물론 자칫 국권까지 그대로 넘어갈 판국이었다. 하릿지 태자 등 참파의 강경파들이 몽골 관리들을 체포해 감옥에 가두었다. 격분한 몽골은 즉시 원정군을 보냈다. 쿠빌라이는 송나라 정복에 공을 세우고 천주 성주로 봉해져 있던 소게투를 차출해 지휘를 맡겼다. 1282년 음력 12월, 350척의 배에 나눠 탄 만여 명의 몽골..
2021.06.18 -
몽골의 3차 송나라 침략 (1) 고립된 양양
내전을 수습한 쿠빌라이는 다시 송나라로 관심을 돌렸다. 송나라 정복은 자신이 떠맡은 역대 대칸들의 숙원사업일 뿐 아니라, 이를 완수한다면 아직도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는 몽골 내 경쟁세력들에게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기도 했다. 그 사이 송의 수도 임안에서는 어린 황제가 즉위하고 가사도가 독재 권력을 굳히고 있었다. 가사도는 재정을 긴축하고 통화개혁과 공전법을 실시했으며 부패한 장군들을 처벌하는 등 정치인으로서는 어느 정도 재능을 발휘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압도적인 적에게 맞설 지도력이 없었던 것은 물론,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쟁자인 장군들에게 권한을 넘길 용기조차 없었다. 가사도는 다음 전쟁의 양상도 과거와 똑같을 것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 준비했다. 몽골 지도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송나라 ..
2021.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