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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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약한 왕들과 권력투쟁
후레(後黎)왕조는 1433년 태조(太祖) 레러이가 사망하고 궁중 유혈사태와 반정으로 큰 혼란을 겪는다. 여기에는 왕자들의 권력욕뿐 아니라, 타잉화 출신의 무장인 개국공신들과 왕이 중앙집권을 위해 힘을 실어주려 한 탕롱 출신의 유학자 문관들의 세력다툼이 근저에 깔려 있었다. 2대 황제 태종(太宗)은 즉위 당시 겨우 11살 어린이였다. 태종은 아버지 레러이의 충신인 레쌋을 섭정으로 임명하고 모든 것을 의지했다. 레쌋은 피 흘려 세운 왕조에 무임승차한 눈엣가시 같은 문신들을 차근차근 제거하고 자기 측근들로 대체했다. 레쌋과 그의 후임자인 레응언 모두 무학자들로 유교보다는 어릴 때부터 익숙한 불교에 기울어져 있었다. 태종이 장성하자 개국공신들의 권력독점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문신들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는 유학..
2021.08.05 -
대명 4차 봉기 2) 승기를 잡다
명나라 조정은 베트남의 실망스러운 전황을 보고 받고 진지 총병관을 강하게 질책했다. 몇 달 내 람선의 불온세력을 섬멸하지 못하면 직책을 박탈하겠다고 경고했다. 진지는 급히 군대를 정비하고 짜롱 수복전을 준비했다. 레러이는 진지와의 결전을 앞두고 딘리엣 장군에게 병사 2천 명을 주어 남쪽의 하띤 성(省)을 공격하도록 했다. 레러이로부터 싸워 이기는 법을 배운 휘하 장군들이 이때부터 전장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딘리엣이 이끄는 람선 봉기군이 남하하자 이 지역에서 활동 중이던 반군들이 속속 달려와 합류했다. 덕분에 람선 봉기군은 코끼리부대와 전투함대까지 갖추게 되었다. 수세에 몰린 명나라군은 하띤 성도(省都)에 틀어박혀 방어에 급급할 뿐 북쪽 응에안의 진지 총병관을 지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2021.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