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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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한 베트남의 패배
참파의 포 비나수르는 베트남의 혼란을 지켜보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비록 승리했지만 1368년 베트남의 대반격을 경험한 포 비나수르의 공세는 위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간신히 목숨을 구한 즈엉녓레의 어머니 등 추종세력들이 참파로 달아나 쿠데타의 부당성을 호소하며 베트남 공격의 길 안내를 자청했다. 덕분에 포 비나수르는 국경지대가 아닌 베트남의 수도 탕롱을 직접 노릴 수 있게 되었다. 공격을 재개한 참파군은 1371년 배를 타고 베트남 북부에 상륙한 뒤 탕롱성을 공격했다. 잘 훈련된 참파군의 기세에 눌린 예종(藝宗)과 베트남 조정은 탕롱을 버리고 달아났다. 베트남 수도가 참파에 함락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참파군은 궁궐을 약탈하고 수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끌고 갔다. 참파군이 철수하자 예종은 ..
2021.07.09 -
그곳에 가면) 호아루의 두 황제 사당
호아루의 옛 궁궐터에는 딘보린과 레호안 두 황제의 사당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딘보린의 사당은 본래 11세기에 지었다 허물어진 것을 17세기 인근 주민들이 뜻을 모아 재건했다. 사당의 정문 현판에는 ‘북문쇄약(北門鎖鑰, 쇠사슬 쇄 + 자물쇠 약)’이라는 글귀를 새겨 넣었다. 북쪽의 방비를 튼튼히 한다는 뜻이다. 사당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연꽃이 가득한 제법 큰 못이 있다. ‘반달연못’이라고 부른다. 사당은 세 개의 문을 지나야 본당에 이를 정도로 경내가 넓다. 본당 앞 제단과 이를 수호하는 용들의 조각이 참으로 섬세해 중세 베트남 건축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딘보린 사당에는 평일인데도 관광이나 참배를 온 사람들이 많았다. 1천 년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뒤 국가체제를 완성하고, 최초로 황제를 자처해 인..
2021.05.29 -
정신병자 후계자와 레 왕조의 종말
북방의 위협을 제거하고 내정이 안정되자 레호안은 그동안 미뤄왔던 남쪽 참파 원정을 단행했다. 참파는 딘보린 황제가 죽은 뒤 레호안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응우옌박을 도와 수군으로 베트남 수도 호아루를 공격하려다 패배해 물러났었다. 그래도 레호안은 송나라의 침략이 임박해오자 참파와 우호관계를 맺기 위해 사신을 보냈는데 참파 왕이 사신을 옥에 가두었다. 이에 격분한 레호안은 송과의 전쟁이 끝난 다음 해 참파를 공격해 수도 인드라푸라를 점령하고 사원과 궁전을 파괴한 뒤 수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왔다. 베트남이 참파에 가한 최초의 공격이었는데, 충격을 받은 참파는 수도를 남쪽 비자야로 옮겼다. 이때부터 참파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 베트남의 남진에 끝없이 밀리다 17세기 이후 국가로서의 형태마저 잃고 소수민족으..
2021.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