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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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전투 1) 명장 유승이 온다
왕통의 패전 보고를 받은 명의 선덕제는 기가 막혔다. 천자가 그만하자는 전쟁을 신하들이 강변해 끌고 가더니 애꿎은 수만 병사들의 목숨만 희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제 와 베트남에서 손을 들고 나온다면 대제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고 주변 이민족들이 명나라를 업신여겨 다른 마음을 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명 조정은 가능한 최대 병력을 긁어모아 15만 명을 다시 베트남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군량 징발이 여의치 않아 광서성과 광동성에 별도의 관리를 파견해야 했을 정도로 명나라로서도 큰 부담을 안는 원정이었다. 새 원정군의 지휘는 안원후(安遠侯) 유승(柳升)이 맡았다. 그는 베트남 정복에 공을 세워 제후의 반열에 올랐고, 영락제의 오이라트 정벌 때 화총부대를 이끌어 대승을 견인했으며, ..
2021.07.30 -
노력하는 왕으로는 부족하다
영원한 것은 없다. 철옹성 같던 쩐 왕조의 통치체제도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이완되어갔다. 오랜 평화 속에 쩐 왕조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제5대 명종(明宗) 치세 말기부터 이미 망국의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명종 자신은 백성의 질고를 근심하며 제왕의 도를 지키기 위해 일평생 노력한 왕이었다. 그는 기근이 발생하면 즉시 곳간을 열어 빈민을 구제하고 세금을 감면했다. 강이 범람하자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직접 강가에 나가 제방 보강을 지휘하기도 했다. 국경의 안정에 힘을 기울이고 외적이 쳐들어오면 군사를 이끌고 나가 맞서 싸웠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사가들은 명종에게 국가를 이끌어 나갈 장기 비전과 역량이 부족했던 것으로 박하게 평가한다. 겉으로는 번영하는 듯 보였던 왕조가 밑에서 썩어가는 것을 그는 깨닫..
2021.07.05 -
몽골의 1차 송나라 침략 (2) 명장 맹공의 분투
맹공이 이끄는 송나라군이 접근해오자 황주 인근에 진을 쳤던 몽골군은 서쪽 형주로 100km 넘게 이동해 감리현에서 도강을 준비했다. 장강 즉 양쯔강이 직선으로 길게 흐르고 양안이 모두 평야지대라 몽골군이 어느 쪽으로 건널지 송군이 예상하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몽골군을 추격해 강 남쪽에 도착한 맹공은 병사들에게 낮에는 부대 깃발과 군복을 수시로 바꾸고 밤에는 수십 km에 걸쳐 횃불을 피우도록 해 송군의 병력을 부풀려 보이도록 했다. 강 건너에 엄청난 대군이 기다린다고 생각한 몽골 병사들은 겁을 먹어 사기가 떨어졌다. 그리고 송군이 강을 건너 기습하자 제대로 맞서 싸우지 못하고 달아났다. 맹공은 몽골군이 도강을 위해 만들고 있던 선박 등 각종 장비들을 불태웠고, 기세가 오른 병사들을 독려해 몽골군의 요새 2..
2021.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