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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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교체 2) 후금 건국과 숨 막히는 압박
구러산 전투의 승리는 만주의 세력 판도를 바꿔놓았다. 여러 부족들이 누르하치를 새로운 강자로 인정했다. 몽골에서도 코르친 부족과 칼카 부족이 복종의 뜻을 전해왔다. 누르하치는 뛸 듯이 기뻐했다. 인구가 적은 여진족이 명나라와 대적하기 위해서는 몽골족과 제휴가 반드시 필요했다. 누르하치는 본인뿐 아니라 왕자들에게도 몽골족과 혼인을 적극 권장하여 두 민족의 융합에 노력했다. 누르하치는 해서여진 부족들을 각개격파해나갔다. 그들은 서로 사이가 나빠 단합하지 못했다. 누르하치는 그 틈을 파고들어 공격하거나 내정에 간섭하며 세력을 넓혔다. 해서여진 부족들을 놓고 예허부와 누르하치의 쟁탈전이 벌어졌다. 명나라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예허부의 편을 들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예허부 외에는 해서여진의 모든 부족들이 누르하치..
2021.08.20 -
죽더라도 싸우겠다
몽골은 참파 침략 도중에 여러 차례 베트남에 사신을 보내 길을 빌려주고 군량을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베트남은 참파가 멸망하면 자신들 역시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식량은 조공 형식으로 제공하겠지만 남진로는 열어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1284년 말 중국 각지에서 무려 20만 명의 대병력이 베트남 접경 광서성으로 이동했다. 쿠빌라이의 아들 토곤이 이끌 이 군대에는 몽골족 정예병과 옛 금나라 땅에서 모은 북방민족 병사들, 옛 송나라 땅에서 징집한 조금은 덜 미더운 한족 병사들이 망라돼 있었다. 토곤은 다시 베트남에 참파로 가는 길을 열고 군량을 제공하라고 요구했지만 베트남의 대답은 똑같았다. 전쟁은 임박했고 전력의 열세는 불을 보듯 명확했다. 흉포한 적의 침략을 앞두고 민심이 흔들리자..
2021.06.19